경철수 사회부 기자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해라’ 추석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벌초들은 하셨나요. 지난 주말 여느 때와 달리 조용하기만 하던 시골마을이 온통 예초기 소리로 진동을 했습니다. 평소 보기 힘들었던 차량들도 저마다 예초기를 싣고 마을 도로가를 메웠죠.

우리 가족도 선산을 찾아 하루 종일 벌초를 하느라 비지땀을 흘렸습니다. 열흘이나 앞당겨 온 추석에 2주나 앞서 한 벌초 때문인지 큰 증조부의 산소옆 대추나무의 대추는 아직도 풋과일 그대로였습니다. 더러는 수줍은 듯 홍조 띤 대추도 있었지만 제사상에 오르기엔 너무도 설익은 듯 했습니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 늘 한가위 같기만 하라던 조상들의 바람도 옛말로 끝나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가져 봅니다. 윗대조 산소에 고조, 증조, 조부까지 수십여장의 산소를 벌초 하면서 속옷까지 적시는 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초기를 돌리는 아버지께 얼음물을 건네며 무심코 건넨 한마디에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웬만하면 사람 사서 벌초하죠. 요즘은 농협에서도 벌초대행을 해 준다 하던데요” 기기를 멈추고 땀방울을 훔치던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투정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남에게 맡기면 산소에 잡목제거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베어 나무등걸이 그대로 남게 된다”는 걱정이셨습니다.

더욱이 아버지는 벌초는 단순히 풀을 베어 산소를 깨끗이 하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적어도 1년에 한 차례 이상 산소를 찾아 조상의 묘를 확인하고 효(孝)를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바쁜 일상에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가족이 모처럼 함께 하며 안부도 묻고 우애를 다지는 자리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쉽게만 생각했던 미풍양속 ‘벌초’에 대한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숙연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벌초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 국어 사전에 ‘벌초’의 의미는 ‘무덤의 잡풀을 베어 깨끗이 하는 일’이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백과 사전은 묘소를 정리하는 과정의 하나로 조상의 묘를 가능한 단정하고 개끗이 유지하기 위한 후손들의정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로 봄엔 한식을 전후해서 하고 가을엔 추석 성묘를 전후해 실시한다고 설명돼 있죠. 전통적으로 묘소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해 벌초에 많은 신경을 써 온 것이 조상들이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자손들이 돌보지 않아 폐허가 된 무덤에 대해 골총이라 부른다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흔히 ‘벌초’와 ‘금초’라는 말이 혼용돼 사용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금초와 벌초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금초는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로 ‘무덤에서 불조심하고 때 맞춰 풀을 베어 잔디를 잘 가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벌초(伐草)는 단순히 무덤의 잡풀을 베어 깨끗이 한다는 의미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추석 전에 무덤의 풀을 베는 것은 ‘벌초’이고 산불이 많이 나는 한식(寒食) 즈음에 하는 벌초는 금초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또 항간에는 무성의 하게 대충한다는 뜻으로 ‘처삼촌 벌초 하듯 한다’는 속담이 쓰이듯 ‘벌초’는 평민들이 사용한 반면 ‘금초’는 양반가에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장마다 달리 사용하는데다 산소에 대한 불조심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구분 없이 쓰이면서 계층에 상관없이 혼용해 사용해도 된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훼손된 산소를 보수하는 것은 사초(莎草)라 해 구분해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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