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시티 사기분양과 정치권의 뇌물 파동을 지켜보면서 꼭 21년전의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을 떠 올리게 된다. 그동안 ‘게이트’로 상징되는 권력형 부정부패의 부침이 계속됐지만 굿모닝시티 사태는 다수의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들을 울렸다는 점에서 장영자 사기사건과 성격을 같이한다. 규모로만 치면 3000여억원을 사기친 윤창열보다 20여년전 무려 6400억원이 넘는 어음 사기를 친 장영자가 훨씬 고수이지만 오히려 그 강도는 굿모닝시티 것이 더 강하다는 느낌이다. 집권당 대표가 언제 날라갈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 됐고 대통령까지 나서 불을 끄기에 급급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 껏 기세를 올리던 한나라당의 운신이 민주당의 대선자금 선공개로 매우 조심스러워졌다는 점이다. 단기 필마의 승부를 즐기는(?) 노무현대통령이 또 한건 만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어떤 형식의 대선 자금 공개도 믿지 못한다. 이미 정치권의 추악한 돈 냄새를 국민들이 한껏 맡아 버렸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동반자살 유혹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똑같이 상처를 받는다고 해도 결국 반사이익은 먼저 문제를 제기한 민주당쪽에 더 많이 돌아가게 된다. 문제는, 여야가 또 이런 식으로 물타기를 한다면 언젠간 다시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이다. 그저 몇사람을 회생양으로 날려 보내고 의사당 뒷무대에서 서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면 그만이다. 검찰의 수사의지가 좀 더 강력하기를 학수고대하는 말없는 다수는 그래서 이 사건이 끝날때까지 단단히 지켜볼 참이다.

차라리 민주당이 조건없이 고해성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면 훨씬 모양이 좋았을 것이다. 민주당이 대선자금을 공개할 때 국민들의 시선은 이미 반대편으로 쏠렸다. 이보다 더 완벽한 게임도 없다. 돈과 당선 가능성은 정비례한다. 대선 때 누가 더 먹었는지는 삼척동자도 잘 안다. 그러나 정치인들도 먼저 죽는건 꺼린다.

최근의 가장 화끈한 희극은 재계의 반응이다. 돈을 받은 사람이 먼저 밝히라는 이른바 ‘속죄론’을 설파하는 저의는 자명하다. 어쩌면 즐기는지도 모른다. 이 마당에 누가 누구를 욕하고 삿대질을 하겠는가. 기업주들에게 국회의원들은 오십보백보다.

 정치인의 돈과 관련된 아주 재미나는 속설이 두 개 있다. ‘정치인의 돈은 눈 먼 돈’이라는 것과 ‘정치인의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는 얘기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치인의 돈은 소속관계가 불분명함을 의미한다. 이유는 뻔하다. 명분없이 들어 온 돈은 결국 명분없이 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역학 관계가 무수한 세월이 지나면서 정설같은 속설로 정착된 것이다.

몹쓸놈의 현상이지만 돈을 적게 쓰고 발로 뛰는 정치인들은 항상 여론에 취약하다. 자칫하면 한 순간에 매도되기도 한다. 씀씀이가 크지 못한 정치인들은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이런데서 느끼게 마련이다. 눈만 뜨면 누가 수억원을 챙겼다는 말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런 정치인들은 그야말로 ‘무능’ 그 자체로 각인될 수 밖에 없다. 이들의 목소리가 숨죽이는 한, 제 아무리 대선자금을 공개해 봤자 결과는 도로묵이다. 지난해 부당한 경선자금 수수를 고백한 김근태의원이 기자에게 사석에서 한 말이 있다. “나만 의리없는 놈으로 찍혀 버렸다. 정치인에게 돈은 참으로 관대하더라”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