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영원 HCN충북방송 보도팀장
충북 출신인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2004년 민음사를 통해서 발간한 <나의 문주 40년 언론-정치 풍속사>는 현대사 한 가운데 있었던 필자가 한국의 언론-정치계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을 고백하고 그 일화를 기록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기자동네 이야기>는 15년간 취재 현장을 누볐던 HCN충북방송의 노영원 보도팀장이 충북지역 기자사회의 이면과 그 일화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노 팀장은 도내 기자 중 유일하게 신문, TV, 라디오, 통신을 거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만큼 충북지역 기자사회의 이면을 잘 아는데다 풍부한 일화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자동네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⑴ - 기자사회의 의리

최근 충북의 기자 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이 때문에 기자 집단을 지켜보는 눈길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필독서 중 한 권은 ‘역사를 위한 변명’이었습니다.

첫 이야기는 ‘기자사회를 위한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기자사회의 의리를 주제로 택했습니다.

충청일보와 중부매일을 거쳐 충북일보에서 활동했던 이인철 선배는 지난 2003년 고인이 됐습니다. 새까만 얼굴에 작은 키였던 이 선배는 평소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술을 먹으면 큰 소리도 칠 줄 아는 선배였습니다.

그러나 도청에 출입할 당시 간암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1년여 투병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선배의 집 근처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선후배들의 정성을 모아 전달한 자리에서 고인이 “만약 살아 있으면 다시 만나자”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귀에 선합니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이인철 선배가 오랜 기간 동안 언론계를 떠나있었기 때문에 기자 또는 출입처 관계자들이 별로 없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예상대로 도내 주요기관의 조문객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내 기자들은 이인철 선배와의 친소여부를 떠나 빈소를 찾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제 기억으론 조문객 중 절반은 기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인철 선배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활발하게 사귀지 않았지만 생전에 그를 잘 알지 못했던 후배 기자들까지 앞 다퉈 빈소를 찾았던 것입니다.

이인철 선배가 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충북일보는 물론 생전에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눠보지 않았던 다른 언론사 후배 기자들까지 빈소를 찾아 고인의 짧은 생을 추모했습니다.

특히 중부매일 기자 출신으로 이인철 선배와 돈독한 정을 나눴던 도청 공보관실 이응규 사무관의 모습은 기자사회 선후배의 의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습니다.

이응규 사무관은 고인이 언론계를 떠나 괴산군 사리면에 칩거할 당시부터 이인철 선배를 챙겼고 간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살릴 방도를 찾았습니다.

평소 술 자리에서도 이인철 선배에게 ‘건강 관리 좀 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이응규 사무관은 고인의 장례식장에서도 부인과 어린 자녀들을 대신해 크고 작은 일을 처리했습니다.

중부매일에서 첫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서 부럽기도 한 반면, 저는 어느 선배에게 저렇게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는지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이인철 선배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5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의 빈소를 찾았던 수 많은 선후배 기자들의 모습에서 기자사회의 의리는 여전하다는 것을 굳게 믿고 싶습니다.

PS:이인철 선배는 딸만 둘입니다. 그래서 아들만 둘인 제가 항상 놀렸지만 “이 화상아”라는 말로 웃고 넘겼습니다. 언론계 대선배였지만 후배의 치기어린 농담도 웃어넘겼던 고인의 얼굴을 가끔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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