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안되는 충북이나 대전이 직제순으로는 우리보다 위다." 이것은 지난 8월11일, 이완구 충남지사께서 한 발언이다. 우연한 발화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왜 이런 발화가 나왔는지 분석해 보기로 하자. 발화에는 표면구조보다 중요한 심층구조가 있다.

문법이나 의미가 이상하다고 하더라도 발화된 결과를 통하여 한 개인의 내면을 분석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푸꼬가 말하는 고고학적 방법론(archeological method)이다. 고고학적 방법론으로 이완구 지사의 발화를 분석해 보자면, 이완구 지사는 충북이나 대전을 싸워야 하는 상대로 보면서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투쟁심을 가지고 있다.

이완구 지사는 무사(武士)다. 국회의원이나 관료 또는 정치가이기도 하지만, 충북경찰청장을 지낸 무사다. 필자도 그의 무사다운 호방함을 본 적이 있다. 저 지난해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문제로, 독립기념관에서 회의를 마치고 어느 곳에 들렀을 때 이완구 지사도 거기 있었다.

김원웅 의원과 우리에게 특유의 무사다운 기백과 진솔함으로 인사를 건넸다. 평판 그대로 이지사는 늠름한 태도의 무사적 위용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친근한 자세로 정치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인간적으로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이완구 충남지사가 "직제(職制)'를 말함으로써 수도권은 물론이고 대전과 충북을 싸워서 이겨야 하는 쟁투의 상대로 설정했다. 충청권까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투쟁현장으로 보고, 그 투쟁에서 이겨야 하겠다는 속내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한 지역의 위정자(爲政者)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또 어느 정도의 전투성이 있어야 추진력도 생기고 비전도 제시할 수 있다. 강력한 충남을 원하는 충남도민들의 뜻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내면적으로는 힘과 권력으로 세상을 보는 이완구 지사일지라도 충북도민과 대전시민을 향해서는 수도권의 독점을 함께 해체하자고 제안하면서 충청권이 힘을 합쳐 "함께 잘사는 충청'을 만들자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좋다.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중심이니까 말이다. 문제는 충북도민이나 대전시민이 보는 충남지사의 전투적 공격성이다. 실수로 표면화되었는지는 모르나, 이런 발화를 접하는 충북도민과 대전시민은 이완구 지사를 달리 볼 수밖에 없다. 이완구 지사의 내면에는 직제와 서열로 약자를 굴복시켜야 하겠다는, 성리학(性理學)에서 말하는 동물성이 잠재해 있다. 그러면 충북이나 대전이 충남에 져야 하겠는가 아니다. 21세기는 그런, 성장발전주의의 투쟁성보다는 인간생태중심주의의 조화와 상생이 더 중요하다. 양보와 타협과 평등이야말로 21세기의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도지사라면 개인이 아니고 공인(公人)이며, 나아가 국가적인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충남의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하던 중에 생긴 발화라고 하더라도 국가적인 인물로는 부적절한 언행이었다. 최근 김문수 경기지사와의 한 판 승부에서 보여준 전투성을 가지고 언젠가는 충북/대전에 포고(布告)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박성효 대전시장이나 정우택 충북지사께서는 이완구 충남지사를 만나면, 서로 웃는 낯으로 덕담을 하면서 충청권의 동반 상생을 이야기할 것이다. 광역자치단체의 수장(首長)은 개인이 아니다. 광역단체장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중요 인사(人士)이고 전국을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자기 지역도 중요하지만 다른 지역을 아우르는 포용력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완구 지사의 좌우명처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수 있어야 그 지역도 발전할 수 있고, 또 개인의 정치적 포부도 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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