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충북산악구조대장·직지원정대장

6월 16일 새벽 3시30분 무명의 히말라야 봉우리는 어둠속에 출발하는 대원들에게 달빛과 별빛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바람은 고요하고 온도도 적당하여 대원들이 운행하기에는 최상의 자연조건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첫번째 바위구간에 볼트를 박고 넘어서 능선에 오르니 서서히 산이 요동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 아홉시 반쯤 되었을 겁니다.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한 이래 처음으로 사람의 발자취를 허용한 정상부 능선은 그리워하던 인간의 모습을 외면한 채 먹구름을 들여와 온 몸을 감싸고 바람을 동반하더니 급기야 눈발까지 날리기 시작 하였습니다.
캠프1에서 정상부를 지켜보고 있는 저로선 드리워진 먹구름보다 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가끔씩 어떠한 소리라도 들릴 때면 혹 비명소리가 아닐까 속을 태웠답니다.

무전기로 교신해서 알아보면 된다구요?
셀파도 없이 등반한 직지원정대는 짐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교신을 위한 배터리만을 가지고 갔기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교신이 불가능했습니다.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 두번째 바위 봉우리를 넘었다고. 또다시 세번째 바위벽을 넘어섰다는 연락도 왔습니다. 앞으로 2시간 후면 정상을 오를 듯 하고 늦더라도 꼭 정상에 오르겠답니다. 정상 등정보다 목숨이 중요하니 날씨 상황에 따라 대처하라고 했지만 내 머리 속에는 ‘꼭 올라야한다’는 간절한 소망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검은 구름, 흰 안개로 주위가 온통 덮일 무렵 오후 4시58분 정상부에서 환호성이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오! 히말라야 신이시여! 우리를 허락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혹시 교신이 안 될까 하는 마음에 멀쩡한 무전기를 하늘 높이 들고 등정 성공 교신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무전기를 들어 올린 팔은 서서히 아파오고, 격려 말은 모두 다 생각해 놨는데 어쩐 일인지 무전기는 먹통이더군요.

속만 타는 것이 아니라 산정을 바라보는 눈도 까맣게 타 버렸습니다.
애간장이 녹아드는 1시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 무전이 열리더니 정상의 목소리가 드디어터져 나왔습니다. “바위벽을 올라서니 반대편 하늘이 열리고, 대원 모두 건강합니다. 이제 비로소 직지봉으로 명명해 직지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정말로 기쁩니다.”

검게 타 들어간 속은 어느덧 회복되고, 멈출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이 흐르더군요.
“오! 히말라야 신이시여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28일간의 일정으로 출발한 직지원정대는 히말라야 무명봉을 세계 최초로 등정하고 직지봉이라 명명하였으며, 파키스탄정부 지명위원회의 공식인정 까지 받았습니다.

국민 모두가 직지원정대의 등정 소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한 직지의 정신을 되새겨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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