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편집국장

날도 더운데 말도 되지 않는 얘기를 해보겠다. 충북에서 최고로 권위 있는 기관인 충북도청에 진압군의 탱크처럼 당당하게 불도저와 굴착기, 굴삭기가 입성한다. 굴착기가 굉음을 내며 도청 건물을 부수기 시작하고 굴삭기는 골조가 드러난 건물의 속살을 파헤친다. 불도저가 건물의 잔해를 밀어내고 나니 거대한 마당이 열린다.

답답한 콘크리트 바닥까지 시원하게 걷어낸다. 다만 1937년에 건립돼 등록문화재 55호로 지정된 도청 본관은 남겨두기로 한다. 조붓한 흙길을 낸 뒤에 풀꽃과 나무 잔디를 심고 상당공원과 경계를 이룬 담장까지 걷어내고 나니 청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럼 도청 본관은 어떻게 할까? 그곳에는 충북 출신 화백들의 그림을 걸기로 한다. 관람료는 기부자에 한해 무료. 1000원이든 얼마든 기금을 낸 사람들은 배지를 달고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다.

도심공동화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청주·청원 통합 이후 100만 광역 규모 도시를 지향하는 새로운 청주시의 최대 화두다. 그러나 제시되는 대안은 천편일률적인 도심 재개발이다.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인구를 다시 도심으로 불러오기 위해 초고층 아파트를 짓자는 것이다.

대규모 아파트를 짓자면 도로도 만들어야하고 토지수용에는 엄청난 혈세를 쏟아 붓거나 민간투자 후 기부채납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러나 자본의 생리를 생각하면 민간투자 역시 주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차는 한갓진 곳에 세워두고 유모차, 휠체어도 걸림이 없이 다닐 수 있는 거리, 나무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도시락도 먹을 수 있는 녹지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도심공동화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는 없을까? 시골기자가 지난 7월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주최한 해외단기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뉴욕에 다녀와서 느낀 소회다.

지방재정에 대해 공부를 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솔직히 가장 인상 깊게 뇌리에 박힌 것은 뉴욕의 거대한 ‘도시숲’이었다.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니까 그럴 수 있다고 공격해도 할말은 있다. 지름만 4㎞에 이르는 센트럴파크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뉴욕 맨하튼의 한복판에 센트럴파크, 말 그대로 ‘중앙공원’을 만들 수 있는 그 발상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도청 자리면 금싸라기 땅인데 ‘땅값이 얼마냐’고 물어도 할말이 있다. 그래도 도청부지는 공공용지라서 ‘발칙한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인근 상가를 허물고 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도 꾸지 못할 얘기다. 공원이 필요한지 필요 없는지만 따져보자는 것이다.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땅값이 싼 외곽으로 도청을 옮기고 그 땅값에 준해 현재의 도청 부지를 매각하기로 한다. 청주시도 예산을 준비하고 주민들도 ‘땅 1평 사기 운동’을 벌인다. 독지가들은 거금을 선뜻 희사한다.

이미 산남3지구(원흥이)를 개발할 때 지역의 환경단체가 원흥방죽 주변 땅 사기 운동을 벌인 바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옥타비아 힐’ 등 영국의 활동가들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의 소유권을 사회적으로 취득하기 위해 1895년 시작한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청주 센트럴파크에서 찍은 가슴 찡한 사랑영화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다…’ 더운 날 혼자 해본 말도 안 되는 상상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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