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한원 곡계굴 위원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당시 충북 단양군 곡계굴 집단희생 사건을 "고의적인 민간인 학살"로 결론내린 4일 엄한원(74) 곡계굴 대책위원장은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냈다.

엄 위원장은 "군사정권 시절에는 한미 연합군의 폭격이었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했다가는 빨갱이로 몰리기 십상이었고, 그래서 함구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이제라도 진실이 규명돼 억울한 희생을 당한 분들께 후손으로서 고개를 들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그는 "당시 생존자 중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고작 8명에 불과하다"면서 "전쟁세대가 모두 떠나기 전에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엄 위원장은 진실화해위의 이날 조사결과에 따라 영동 노근리에 준하는 위령사업 추진을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위령탑이 설치된 추모공원 또는 평화공원을 건립하고 유족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한국전쟁 양민학살 유족회와 함께 미국 정부 등에 요구해 나갈 각오다.

당시 4살이었던 조병규씨(62)는 이날 미군의 폭격으로 할아버지와 고모, 삼촌 등의 가족을 잃었다.

조씨는 "동굴 안에서 너무 울어 쫓겨나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며 "곡계굴 폭격 이틀 전부터 영춘면 일대에 폭격이 시작됐고, 이를 피해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곡계굴로 숨어들면서 희생이 컸다"고 술회했다.

곡계굴 폭격사건 생존자들과 유족들은 영동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 작업이 활발했던 1999년부터 대책위원회를 꾸려 적극적인 명예회복 작업을 벌여왔다.

세간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2005년 6월 국회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사진전을 열고 매년 1월 곡계굴 앞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내온 끝에 진실화해위는 2006년 곡계굴 사건을 우선 조사대상으로 선정했다.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추진한지 10년 만에 '무고한 양민학살 사건'이라는 정부기관의 공식 발표를 이끌어낸 단양군 영춘면 주민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아직도 많다.

엄 위원장은 "진실만 규명됐을 뿐이지 아직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제시된 것이 없는 실정"이라면서 "그것이 없다면 통한의 세월 60년을 살아 온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단양 곡계굴 양민학살 사건은 1.4후퇴가 한창이던 지난 1951년 1월20일 미군 폭격기가 피난민이 숨어있던 곡계굴을 폭격하고 기총으로 사살한 사건으로, 이 폭격 등으로 200여명(진실화해위 추산)의 민간인이 숨졌다.

진실화해위는 이 폭격으로 숨진 희생자 중 미성년자와 여성이 62%에 달하며, 피난민으로 위장한 인민군을 소탕하려던 이 작전은 미군 내부에서도 이의를 제기했을 정도로 과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