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대표이사

충북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지난 28일 청주시 비하동 대형 할인마트 건립과 관련한 행정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당초 청주시의 도시계획시설변경 인가 조건부 결정이 부당하다며 시행사가 이의를 제기했던 것. 시행사는 대형 할인마트 건립에 따른 충북도 교통영향평가까지 마친 상태라서 행정심판 결과를 낙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행정심판위원들은 2시간 30분에 걸친 장시간 토론끝에 전원합의로 기각시켰다. 기각사유는 "충북도 대형마트 제한 업무지침과 법규정을 떠나서 공익적인 측면을 고려해 다수인 재래시장을 살린다는 차원“이었다. 법리적으로는 신청인의 주장이 타당성 있지만 현실적으로 재래시장을 보호하는 공익이 더 크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이날 도청 앞에는 1500명에 달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모여들어 대형마트 입점반대 집회를 열었다. 결국 2번에 걸쳐 회의를 연기하며 판단을 유보했던 행정심판 위원들도 이날 시장 상인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행사측은 행정소송 방침을 천명했고 청주시는 패소하더라도 끝까지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률만능의 시대’에 지방자치단체가 승산이 희박한 행정소송을 감수한다는 것은 의외다. 하지만 청주시는 이미 7개의 대형마트가 들어선 이후 재래시장 피해상황을 잘알고 있다. 따라서 소송비로 얼마간의 예산을 날리는 한이 있더라도 영세상인들의 실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대한민국의 ‘떼법’이 실정법 위에 있다고 비아냥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자유경쟁 체제에서 다윗과 골리앗은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 않는다. 육거리시장의 하루매출보다 대형마트 한곳의 매출이 크다면 이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자치단체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지붕을 덮고 야간조명을 설치하는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대형마트 매출은 더욱 늘고 재래시장 점포와 동네슈퍼는 줄고 있다. 일반 소비자가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살 권리도 중요하지만 당장 생계를 잃고 나앉아야 할 시장 상인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들이야말로 먼길을 함께 가야할 우리들의 가까운 이웃이다.

촛불정국이 한창일때 한 신문에 실린 비정규직 노조위원장의 인터뷰 기사가 눈길을 붙잡았다. “촛불 집회에 나오면서도, 전기가 끊겨 아이들이 촛불을 켜 놓고 공부한다던 비정규직 조합원의 말이 떠올라 차마 촛불을 못 켰다” 우리의 경제·사회 시스템은 민주주의의 중핵인 중산층을 허물어뜨리는 쪽으로 오작동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OECD 평균을 2배 가까이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비정규직이 858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54%에 이른다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일은 아니다. 우리는 ‘고통분담’이란 말을 위를 향해서만 외칠 뿐, 내가 나눠줘야 할 것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밑은 보지 않고 위만 바라보는 한국인 특유의 상층지향성은 특유의 근면성과 역동성을 낳는 장점이긴 하지만, 이것이 사회정의 문제에 이르면 거의 재앙이 된다.

2년전 우리은행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사측과 임금동결에 합의함으로써 언론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오퍼레이터 등 3천여명의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노조측은 이듬해 동결했던 임금 인상분까지 무리하게 사측에 요구하는 바람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노조의 영향력이 큰 대기업일수록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가 공동으로 풀어야할 숙제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지만 분명 내게도 나눠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나부터 이웃과의 ‘아름다운 동행’에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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