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관 교수가 2008년 7월 놀라운 선언, 아니 제안을 했다. 자신의 소중한 재산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 피거산 기슭의 토지와 작품 등을 충북도립미술관 건립을 위해 희사하겠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희사와 보시(布施)만 해도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했거니와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기가 어려운 까닭일 것이다.

욕심과 욕망의 번뇌에 채이고 밟히다가 한뉘를 마감하는 것이 대다수 인간의 운명일진대, 고승관 교수의 높은 뜻은 아무리 상찬을 하더라도 부족한 미담이다. 예술정책 전문가로서 고승관 교수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괴산에 도립미술관이 건립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혹자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이용자가 적을 것을 염려하면서 청주 건립을 주장하실 수도 있고 그런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사람 숫자로 예술을 재단하는 천민주의 예술관을 일컬어 맬더스적 오류(Malthusian fallacy)라고 일컫는다.

인구절대주의로 하자면 중요한 시설은 언제나 서울경기의 수도권에만 배치되어야 하며 충북의 경우 청주청원에만 설치되어야 한다. 만약 예술정책이 수치계량에 얽매이게 되면 문화복지는 외면당하고 결과적으로 창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문화예술의 발전은 요원하다.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은 그런 성장패권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중소형미술관의 다수 건립이라는 또 다른 미술계의 과제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며 충북 대표미술관의 건립은 예술계에서 열망해온 것인 만큼 2010년 이후로 미루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힘을 합하여 이번에 실현시켜야 한다. 고승관 교수의 제안을 계기로 충북도립미술관이 괴산에 건립된다면 이를 통하여 남한강유역 문화권의 문화자산을 상품화할 수도 있고 충북 남북부는 물론이고 청주를 포함한 중부지역까지 아우르는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

정우택 지사께서 큰 뜻을 가지고 추진하는 문화선진도는 평범한 일을 평범하게 하여 평범한 성과를 내자고 실행하는 정책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광역자치단체에서 하지 못하는 특별한 일을 특별하게 하여 특별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술관(美術館)이라는 어휘나 거대건축 지상주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유명작품 소장전시나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은 충북의 재정이 감당하기 어렵고 향후의 운영 또한 쉽지 않다.

특히 미술에만 치중할 수 없는 예술장르간의 균형성이나 현실적 재정능력도 중요하므로 도민의 문화복지 차원에서 가능한 수준의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 바람직한 차에 고승관 교수가 의미 있는 제안을 한 것이다.

이곳의 이름도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짓고 야외 체험학습형 미술복합센터의 개념으로 설계해 볼 수 있다. 고승관 교수의 노력으로 이미 특별한 조형미와 민족민중적 의미를 확보하고 있는 돌탑공원을 확장하여 한국적 돌탑미술공원과 같은 개념도 생각해 볼만하다.

이 충북 무릉도원 미술복합센터에 미술관, 야외 돌탑공원, 미술체험학습장, 미술도서관, 충북미술연구소, 미술캠프를 목적으로 하는 미술학교, 도요지, 창작스튜디오 등 시민영역의 민과 행정영역의 관이 함께하는 특별한 미술종합공간을 만들 수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관계하는 일에서 자기 주변 사람만을 중심으로 하거나, 자기를 위한 공연을 하거나,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거나, 자기 스스로를 높이거나, 자신의 이름을 내거나 하는 등 이기적인 일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 행위를 하고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예술가들의 예술윤리 불감성은 실로 개탄할 지경이거니와 그럴 예술가들은 머지않아서 충북예술사라는 법정에서 엄정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이런 세태에 고 교수와 같이 엄격한 윤리로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자세는 충북예술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고승관 교수 역시 본인의 발화 그대로 사심없이 충북도립미술관 건립에 희생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