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 회의 '금강산 사건' 공방전

<한국일보>북한이 참여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다자 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15차 회의가 열린 24일 싱가포르는 하루종일 어수선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ARF 회의 테이블에 올려 놓은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 공론화를 추진했지만 북한은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다. 이 와중에 북한 대표단의 한국 정부 비난 내용이 공개되는 등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ARF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과 한국 미국 중국 EU 등 ASEAN 대화 상대 10개국, 북한 몽골 등 모두 27개 나라가 참여하는 장관급 연례 안보포럼이다. 구속력은 없지만 지역 안보 현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 받는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1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이후 양자ㆍ다자회담, 북한과의 접촉에서 5차례 이상 금강산 문제를 꺼냈다. 24일 ARF 회의에서도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단 방북 수용을 공개적으로 북측에 촉구했다. 미국 중국은 지난 주 각각 북한에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용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회의 기간 "금강산 사건은 남북 간 문제"(박의춘 외무상) "외무성 관할이 아닌 북남 간 문제"(리동일 외무성 과장) 등 언급 자체를 꺼렸다. 미국 중국의 압박에도 무반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 공론화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국 정부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금강산 사건을 남북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가 ARF 회의에서 북핵 문제 등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언급되는 등 호응을 얻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날 북한 박 외무상의 이명박 정부 비난 발언이 공개되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6ㆍ15, 10ㆍ4선언을 부정하는 정권이 남한에 출현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발언은 북한 매체와 당국자들이 해 오던 이야기지만 국제회의 석상에서 언급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의장성명은 금강산 피격사건을 조속히 남북간에 해결할 것을 촉구했고, 북한의 요구에 따라 10ㆍ4선언에 바탕한 남북 대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대한 강한 지지표명을 했다. 이는 남북의 요구가 적절히 반영된 것이다.

북핵 문제의 경우 23일 6자회담 외교장관 비공식 회동에서 합의된 '북핵 검증을 위한 비핵화 실무그룹회의 개최' 원칙을 확인하는 선에서 정리됐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 관계자는 이날도 "검증은 우리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 6자회담 참가국 모두가 자기 의무사항을 이행해야 하고,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중요하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 효력 발휘 시점(8월 11일)까지 북미 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독도 문제는 회담 기간 내내 대화를 요청하는 일본과 이를 거부하는 한국 간 한랭전선이 형성됐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