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수 사회부 기자

"한 쪽에선 재래시장 활성화를 얘기하면서 다른 쪽에선 수수방관하고 있죠" 지난주 청주의 한 재래시장을 찾았을 때에 상인이 건넨 말입니다. 200여명의 영세 상인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곳은 요즘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세 상인들은 보증금 1500만원에 월 15∼30만원의 월세로 겨우겨우 상가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영세 상인들이죠.

이들은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며 재래시장의 어려움을 하소연했습니다. 민선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영세 상인들은 파리 목숨처럼 연명해 한다고 말입니다. 황당한 것은 지역 국회의원이 상인들을 찾아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4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는데 깜깜 무소식이란 푸념이었습니다.

당시 청주시 재래시장 활성화팀도 함께 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사업비 지원은커녕 서울의 한 재력가가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하나 둘씩 문을 닫고 공동화마저 빚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주민을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이 따온 예산을 청주시가 움켜쥔 채 집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상인들은 '누구를 위한 자치단체'이고 '누구를 위한 자치단체장이냐'며 오히려 기자에게 되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한 쪽에선 상품권까지 발행하면서 한 쪽에선 재개발을 이유로 예산 지원마저 주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세 상인들은 기자에게 하나의 숙제를 던져주는 듯 했습니다.

기자의 호기심은 발길을 청주시로 향하게 했습니다. 우선 서울의 한 재력가가 재래시장을 재개발 하려 한다는 것에 대해 실무부서 공무원들은 ‘들은 바도 서류가 접수된 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지역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경제 통상과를 찾았죠. 담당 공무원은 "예산이 배정된 것이 사실이며 재개발 움직임이 있어 예산 낭비를 우려해 집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담당 공무원의 말이 기자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시켰죠. 재래시장 활성화를 부르짖는 청주시가 영세 상인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영리를 추구하는 한 민간업자의 재개발 움직임에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다(?). 건축허가가 나지도 않았고 토지수용 과정에서 중단되는 재개발 사업도 많은데 청주시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재개발 사업을 위해 고사 직전인 영세 상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직무유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산 배정을 책임지는 실무부서 직원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재개발 움직임 때문에 예산 배정을 하지 않았다”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내린 결론은 “우린 협의 부서로 실무부서가 사업계획서를 내려줘야 예산을 배정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확인취재에 결국 책임을 다른 부서에 떠넘긴 것입니다. 예산낭비를 우려하는 청주시의 입장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시가 영리를 추구하는 개발업자를 위해 존재하는지 지역주민을 위해 존재하는 지 말입니다.

영세 상인들은 재개발은 시기상조라고 말했습니다. 예산이 지원되면 LED간판 정비로 재래시장은 더욱 단정한 외관을 갖게 되고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상인들의 노력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란 말이었죠. 더욱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영리를 추구하는 한 민간업자의 재개발에 수수방관하는 자치단체를 두고 누구를 위한 자치단체인지 되묻는 영세 상인들의 입장이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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