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끌려 다닐수 없다” 위기의식 반영

LG화학이 직장폐쇄라는 막다른 골목의 선택안을 고려하고 있는 데에는 회사가 노조측에  더 이상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지금처럼 노사간에 현격한 시각차이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회사측의 최종안을 혹시 수용한다면 극적인 합의가 가능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임단협 과정을 놓고 볼 때 이 경우를 현실적으로 상정하기는 무망하다는 현실분석도 하는 것 같다.

“지난해 정기 상여금 800%를 제외하고 연말에 450%의 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했다. 월급이 100만원이면 450만원씩을 한꺼번에 받아 간 것이다. 지난해 임금인상은 9.9%선에서 이뤄졌다. 노조는 지난해 회사가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낸 만큼 이를 임금인상에 반영하라며 올해 20%가 넘는 임금인상률을 제시하고 있는데, 회사측으로선 흑자분을 이미 임금에 반영했다. 더구나 올해의 경제전망이 얼마나 불투명한가. 만약 올해 적자가 발생한다면 임금의 삭감이나 구조조정을 노조에서 받아들이겠는가.”

사무직원들의 역차별 불만

LG화학 청주공장의 한 사무직 근로자는 “노동운동도 이제부터는 도덕성을 띠어야 하며 이런 점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확립될 필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느낀다”며 “IMF때에도 사무직은 상여금을 반납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생산직 종업원들은 온갖 임금 및 복지혜택을 다 누리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기능직원들이 사무직과의 임금차별을 주장하는 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니 오히려 사무직원들이 역차별의 불만을 토로해야 할 판이다. 사무직원들은 퇴근시간이 따로 없이 잔무가 있으면 밤늦게까지 남아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 때 잔업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사무직들은 연봉제인 때문이다. 반면 기능직들은 호봉제로 잔업 및 휴일근무수당을 따로 받는데다 정년까지 보장받는다. 40대 이후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무직과 비교해 보라. 기능직들은 소위 화이트칼라들의 암울한 처지를 비유한 ‘사오정’ 괴담에서 자유롭지 않은가.”

이런 사무직의 불만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회사측은 예전에 볼 수 없던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뭔가 단단히 작심한 듯하다. 더 이상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에 한없이 끌려 다니지는 않겠다는 결의마저 묻어난다. 직장폐쇄도 불사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분규의 전통을 세워보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 온 LG화학의 기업문화에서 볼 때 이는 전례를 찾기 힘든 대노조 강경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 이상 가동 멈출 수 없다”

회사측이 14일 조간 신문부터 다뤄줄 것을 전제로 보도자료를 일요일인 13일 각 언론사에 배포한 것만 해도 그렇다. 배포시점도 예사롭지 않지만 내용도 주목을 끌었다.

회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울산 청주 익산공장 등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사업장에서 파업에 돌입한 여파로 LG화학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관련 외주업체 및 협력업체 등도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자동차부품 및 정보전자소재 등의 생산차질로 인해 이들 제품을 사용하는 자동차 및 전자 건설업계에 연쇄피해가 예상되며, 울산 사출공장 경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범퍼류와 내장재 스티어링 휠 등의 납기준수가 불가능해져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줄 우려마저 있다”고 밝혔다. 또 2차 전지와 편광판 등 정보전자소재를 생산하는 청주공장의 파업으로 인해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으로 부상한 휴대폰 및 TFT-LCD 등의 생산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자해성(?) 고백도 서슴지 않았다.

나아가 회사측은 “장기파업으로 인한 거래선의 생산차질 등 연쇄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장폐쇄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연한 소회를 밝혔다. 회사는 “직장폐쇄 뒤 사무직 및 비노조원을 투입, 최대한 공장가동에 나설 계획”이라는 방침까지도 밝혔다. 나아가 회사측은 다시 한번 파업의 원인을 노조의 지나친 임금인상 요구로 돌리며 “노조의 불법파업행위에 대해서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스스로 타협의 여지를 없애 버렸다. 회사는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는 만큼 현 사태의 해결을 위한 키는 노조의 손에 달려 있다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번 주가 고비될 듯

하지만 노조측은 회사의 이런 경고를 아직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다만 민주노총에서는 “회사측이 이번 임단협을 앞두고 어떤 시나리오를 짜 놓고 이에따라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한편 회사측이 직장폐쇄를 고려하는 것은 합법적으로 직장폐쇄가 이뤄질 경우 관련 법규에 따라서 비노조원이나 사무직들을 동원, 공장가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회사로서는 파업의 손실을 만회하며 동시에 거래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이같은 고육지책을 생각하고 있는 것.

그럼 직장폐쇄는 현실적으로 실현될 것인가. 회사측은 이에대해 구체적인 방침까지 세워놓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현재 서로 물러설 수 없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와 사의 분위기로 보아 양자간 갈등구도가 장기화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는 언제 점화될 지 모를 뇌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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