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복 충주시장께서는 아마도 공공적인 장소의 공식 표지판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시장께서 그런 것까지 관장하는 것도 아니고, 설치된 것도 예전의 일이며, 또 약간 모호한 표현이 있더라도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께서는 관련부서의 책임자를 보내서 확인해 주시기 바란다. 탄금대의 권태응 문학비 앞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표지판이 있다.

<권태응이 남긴 대부분의 시가 애국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감자꽃'도 일제의 창씨개명(創氏改名)에 맞선 작품이라는 평이 있는데 동시(童詩)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언뜻 보면 아무 잘못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권태응의 문학세계와 삶을 잘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분석해 보면 이 문장은 틀렸을 뿐더러 충주의 문화자산을 훼손하는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글은 단어 하나는 물론이고 글자 하나하나 띄어쓰기까지 정확하고 엄정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인용한 부분은 세 문장으로 분할되는데, 세 부분이 모두 문제가 있다.

세 문장이란 <1)권태응이 남긴 대부분의 시가 애국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2)'감자꽃'도 일제의 창씨개명(創氏改名)에 맞선 작품이라는 평이 있는데 3)동시(童詩)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로 삼분된다.

1)은 사실이 아니다. 이 글을 초안하고 검증한 분들이 누군지 모르겠으나 권태응의 작품을 읽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권태응의 시나 소설 기타 글은 애국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가 애국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3)에서와 같이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권태응의 항일민족정신을 작품 해석에 그대로 투사한 혼동으로써,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한 오류다.

2)는 부분적으로 맞지만, 어미의 역접 때문에 결과적으로 틀렸다. '창씨개명(創氏改名)에 맞선 작품이라는 평이 있는데'의 '데'는 부정을 위한 부정어법이다. 그러니까 '데'는 '감자꽃'이 창씨개명에 맞선 작품이라는 평가를 약화시키고 부정하는 것으로써, 완전부정은 아니고 부분 부정이다. 그러니까 '데'라는 어미는 2)를 부분 부정하면서 3)의 의도를 강조하고자 하는 반어법이다.

그렇다면 3)은 무엇인가? 3)은 '동시(童詩)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로써, 앞의 항일정신을 부분 부정하고 약화시키면서 서술 주체의 의도대로 순수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권태응의 항일민족정신보다 순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써, 이것은 권태응의 문학정신과도 배치되고 문학교육적으로도 옳지 않다. 권태응을 말하면서 항일민족정신을 약화시키고 문학의 순수성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작가에 대한 모독이고 또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키는 오류다.

따라서 이 문장은 <권태응은 훌륭한 시와 소설 등 많은 글을 창작했으며 일제의 창씨개명(創氏改名)에 맞선 작품으로 읽히는 '감자꽃'은 순수한 마음을 표현한 동시(童詩)로 문학사적 의미가 있다라고 고쳐써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부정의 어법도 없어지고 항일민족정신과 순수한 마음을 동시에 강조하면서 내용과 형식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처럼 단어 하나와 조사 하나에도 뜻이 달라지므로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특히 금석문을 새길 때에는 극히 조심하는 한편 반드시 전문가의 자문(諮問)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표지판 수정을 권고하는 바이며 모든 자치단체에서는 이런 표지판을 세울 때는 정확하게 고증하고 신중하게 검증한 후 세울 것을 재차 당부 드린다.

권태응과 신경림과 박재륜을 배출한 충주에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있다. 특히 지난 10여년간 권태응문학제와 권태응문학잔치를 위해서 희생과 봉사를 해온 박상규, 윤장규, 허의행, 이종수 등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으므로 이분들의 자문을 받는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의 실수는 아무런 잘못이 아니다. 실수를 알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김호복 시장께서는 해당 부서에 지시를 하여 표지판을 고쳐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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