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박마저 깨진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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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마저 깨진 말아야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8.07.18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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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상 대표이사

대략 10년전 쯤으로 기억된다. 청주지방검찰청 청사 복도에 지역 작가들의 미술작품이 줄지어 걸렸다. 수백점의 작품을 장식해 놓고보니 무겁던 청사 분위기가 화랑처럼 밝아졌다고 칭송이 자자했다. 하지만 지역 미술계 일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번지고 있었다.

예술과는 번지수가 안맞을 것 같은 검찰청사에 미술 작품이 설치된 자체가 영광스런(?) 일일텐데…무슨 연유일까. 당시 청주지검은 유모 검사장의 지시로 지역 화가들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품을 구입한 것이 아니고 무료로 임대받는 조건이었다. 검찰청사를 찾는 민원인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무상제공하고 언제든 필요할 때 떼가라는 것이었다.(이번에 새 청사로 이전하면서 작품을 회수해 갈 지 혹은 계속 무상대여할 지 연락하라고 해당 작가에게 통보했다)

“시민들의 문화적 향유를 위한 작품 ‘쾌척’” 언론보도의 제목은 그럴듯 했지만 직업 작가들의 속은 쓰렸다. 그림, 조각 자체가 생업이며 ‘밥’인 작가에게 그냥 내놓으라는 자체가 ‘무시’ ‘압력’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실제로 충북도청, 청주시청이 그런 식으로 제안했다면 과연 수백점의 작품이 모였을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요즈음 역시 ‘지역 미술계 일부’가 지방검찰, 법원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청주에서 오랜기간 창작활동을 해온 중견작가 L씨는 ‘직업 작가의 작품을 국가기관에서 80만원에 구입하는 현실이 수치스럽다. 이런 풍토를 막지못한 부끄러운 선배로서 청주시 장식미술심의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하려 한다’고 비장한 심정을 밝혔다.

최근 청주지방법원이 새 청사에 설치할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최저 80만원의 작품가를 책정한 심사서류를 보고 L씨는 심사장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그냥 달라던 작품을 그나마 80만원을 준다고 하니, 국가기관의 문화적 척도가 그만큼 향상된 셈인가. 이에대해 청주지법 관계자는 “지역 작가들의 협조로 한정된 예산(1억7천만원)이지만 많은 작품(60여점)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미술품 구입에도 ‘다다익선(多多益善)’의 단순한 미덕이 적용된다니 놀랍기만 하다.

미술 작품을 감정평가해 선별하는 작업을 법원·검찰 직원들이 맡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보니 공모형식을 취하거나 수의계약일 경우 외부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참고해 작품을 선정한다. 청주지법의 경우 법원 조정위원으로 오랜기간 활동해온 서예가 K씨를 새 청사 미술품 설치의 멘토(Mentor 조언자)로 삼았다.

하지만 본보 취재결과 K씨는 유일하게 법원,검찰 양측에 자신의 작품을 판매했고 법원이 매입한 서예작품의 80%가 자신이 운영하는 서예모임 회원들의 작품이었다. 특히 서예전공 임에도 불구하고 외부 조형물 공모전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해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는 ‘오지랖’을 과시했다. 또한 K씨는 법원으로부터 파행운영중인 운보문화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선임돼 두 달만에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7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 정도면 지역의 ‘문화 권력’이란 얘기가 나옴직 한데, 당사자는 “작가들이 가격기준을 떠나서 기증하는 심정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미담”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예총-민예총으로 나눠진 지역 예술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사태를 국가기관이 부적절한 외부 멘토를 통해 저지른 불공정한 행정행위로 규정하고자 한다. 50여명의 회원 가운데 단 1명도 작품 구매 의뢰조차 받지 못한 충북민예총 미술작가들에게 ‘밥그릇 싸움’ 그만두라고 외친다면, 이게 바로 쪽박마저 깨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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