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초복(初伏)을 지나 23일 대서, 26일이 중복이니 여름도 이제 본격적으로 제 철에 들어 선 듯 합니다. 곧 장마가 끝나면 폭염과 함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터입니다.

옛날 선조 들은 한 여름 삼복이 되면 냇가에서 천렵(川獵)을 하거나 계곡에 들어가 탁족(濯足)놀이를 하는 것으로 한여름 더위를 식혔습니다. 천렵이란 물고기를 잡아 막걸리와 즐기는 일이요, 탁족이란 글자 그대로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 것인데 중국의 초나라 가요집 초사(楚辭)어부편과 맹자 이루장(離樓章)의 동요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거든 발을 씻으리라’한데서 연원(淵源)을 둡니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요즘 같은 한여름이 되면 삼삼오오 숲 속으로 들어가 청간옥수(淸澗玉水)에 발을 담그고 피서를 즐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시대 팔도의 피서지로는 금강산과 안변의 석왕사, 심방의 약수포, 원산의 명사십리, 인천 월미도 등이 손 꼽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피서는 양반 토호들의 호사(豪奢)였지 호구지책에 허덕이던 보통 백성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 했고 기껏해야 냇물에서 멱을 감거나 정자나무아래서 장기를 두는 것이 고작 이였습니다.

바캉스 철을 맞아 또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버스 터미널과 역, 공항은 이미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고 그러잖아도 막히는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는 어디라고 할 것 도 없이 또 한차례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이제 전국의 피서지는 인산인해가 되고 이름난 해변, 명산은 떼지어 모여드는 피서객들로 한 바탕 북새통을 이룰 것입니다.

땀 흘린 뒤의 휴식은 노동의 신성한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다람쥐 쳇 바퀴 돌 듯 하는 판에 박힌 일상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 일은 쌓인 피로를 씻고 심신의 밸런스를 되찾게 해 준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처럼 여름 바캉스는 재충전을 통해 일상으로 다시 돌아 왔을 때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캉스는 그 문화가 일천하다보니 조용히 쉬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왁자지껄 한바탕 판을 벌여 흥청망청 즐기는 것으로 잘못 인식돼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셋이 모이면 고스톱 판을 벌이고, 떼지어 술 취해 떠들고, 목이 붓도록 노래방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이 바캉스 풍속도가 된지 오래입니다.

교통 체증으로 지루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바가지상혼이 기다리고, 불편한 잠자리, 불결한 환경, 소란 속에 몇 밤을 보내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휴가, 그것이 바로 우리 바캉스문화의 현주소입니다. 쾌적하게 편히 쉬는 것이 아니라 고역을 치른다는 말이 더 적합할 듯 합니다. 그러기에 휴가후유증이라는 희한한 증세마저 겪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뜻 있는 여름피서는 없을까요. 아니, 있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인적 드문 계곡을 찾아 나무에 등 기대고 앉아 새소리, 물소리 들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져 미지의 세계를 여행해 봄은 어떻습니까. 아니면 아이들 손잡고 고향을 찾아 어른들 뵙고 어릴 적 친구들 만나 그 옛날 뿌리를 확인하는 농촌체험은 어떻습니까. 좋은 피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기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경기가 IMF때 보다 더 나쁘다고들 비명입니다. 검소하고 차분한 휴가가 되어야하겠습니다. 폭염아래 들에서 땀흘려 일하는 농민들, 생업에 얽매여 여념이 없는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해서라도 분별없이 흥청대는 나들이가 돼서도 안되겠습니다. 그것이 동시대를 함께 사는 국민 각자의 도리이기도 합니다.

여름 휴가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생산적인 것이 되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삶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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