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생활중 발병, “재계약 맺고 스스로 그만두고 싶다”
한 때 그는 무용가였고, 청주시립무용단 단무장이었다.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춤을 춘 만큼 춤꾼으로 사는 생활에도 만족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투사’가 됐다. 청주시 관계자들과 길고 긴 복직투쟁에 들어간 남기균(37·청주시립무용단원)씨.
지난 4일 남씨는 청주시로부터 ‘시립예술단원 위촉기간 종료’라는 통보를 받았다. 남씨의 계약기간이 9일 만료되나 재위촉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단원생활을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근로기준법상에서는 이런 사실을 1개월 이전에 통보하라고 못박고 있지만 시는 불과 5일을 남겨두고 알린 것부터 그는 불만이다.

임파선 암 진단 받고 투병

이에 대한 전후관계를 설명하려면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9월 인쇄출판박람회 개막공연일에 심한 무력감을 느낀 그는 한달간 감기증세로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청주-중국 무한시 경제교류 추진과 상해 동방항공 비행기 유치’ 건으로 나기정 시장과 중국 방문에 동행했던 남씨는 현지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 때 병이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 같다. 빡빡한 일정인데다 몸상태가 안좋아 잠을 못잘 정도로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가지 말라는 가족들의 만류가 있었으나 파견 인원의 부족으로 그럴 수가 없었고 이미 비자수속이 끝난 뒤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았는데 악성 림프종(임파선 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개월씩 2번에 걸쳐 병가를 받은 그는 투병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4월 10일 첫 출근한다. 휴직을 요구했으나 시 관계자는 조례상에 휴직조항이 없어 안된다고 답변했다는 것이 남씨의 말이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그만 둘 것을 종용했다는 것. 그의 싸움은 사실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무장은 휴직이 안된다고 해서 상임단원으로 자진해 내려온 남씨가 받은 것은 결국 3개월 격리조치 두 번이었다. 격리조치는 신체·정신상의 하자로 단원들과 격리시키는 것이나, 휴직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청주시가 취한 일종의 편법이었다는 것. “공무원들은 3년간 휴직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왜 휴직이 되지 않는가. 시에서는 우리가 단체행동을 하면 공무원이라 안된다고 하는데 이럴 때는 왜 공무원이 아닌가”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씨는 시립예술단원들의 고용불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단원들은 2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맺지만 매년 연말 실시하는 오디션에서 점수를 낮게 받으면 그만둬야 하는 신분이다. 특히 일부 단장들은 종종 자신에게 밉보인 단원들을 내쫓는데 이런 규정을 악용, 단원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 최근의 시립국악단원 2명 해촉 건 역시 이렇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시립예술단 노조측의 주장이다.
한편 격리조치가 끝나고 나오자 시에서는 그에게 진단서를 요구했다. 재계약을 위해 찾아낸 방안이 진단서 제출이라며 서류를 내면 재계약을 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미 3개월간 출근해 왔고 문제가 없었는데 왜 진단서를 요구하느냐고 따졌더니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계속 근무가 가능한지 알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서 남씨는 시내 모 외과로부터 ‘검사결과 뚜렷한 재발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고 모두 정상수치 범위내에 있음’ 이라는 진단서를 시에 제출하고 재계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입원기간 동안 그 독하다는 항암제를 이를 악물고 12번이나 맞으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세브란스의원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춤이 좋아 시작했으나
지금은 가슴아파”

그러나 상황은 산넘어 산. 진단서를 제출했음에도 시 관계자로부터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 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한다. 발병이 업무와 관련된 것이고, 그중 중국공연이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병 때문에 단원 계약을 맺지 못하는 것은 불명예 퇴진이라고 생각한 남씨는 무용단 안무자인 박재희 교수(청주대 무용학과)를 찾아가 “그동안 활동한 것도 있고 하니 재계약을 맺고 스스로 그만두겠다. 명예롭게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으나 박교수로부터 “재계약 전에 그만두라”는 대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집회와 서명운동을 벌여 복직투쟁을 진행하겠다는 그는 춤이 좋아 예술단 생활을 시작했으나 그동안 상처받은 것으로 인해 가슴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시에서는 몸 때문에 연습을 안 한다고 하는데 계속 그러면 기획과 행정일만 하는 단무장으로 원직 복직 시켜줄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남씨는 “서울시립예술단은 부상, 질병 등으로 1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하다고 나오면 1년 이내 휴직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그동안 3개월씩 2번에 걸쳐 휴직을 해줬다. 위촉기간이 2년인데 남씨가 쉰 것은 병가·연가를 합쳐 1년정도 된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출근해도 연습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안무자도 단원생활이 힘들다고 판단했다. 6개월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할 때는 해촉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조례에도 나와있다”며 잘라 말했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탈춤을 배운 뒤 춤꾼이 됐다. 노동자문화연구회에서 풍물과 춤을 결합한 작품을 연구하고 노동자집회에 참가해 공연을 하는 등 열심히 활동하다가 전문적인 기량을 습득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94년 청주대 무용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졸업후 서울시립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하는 그를 청주시립무용단에서 단무장으로 스카웃 해오면서 이 곳 무용단과 인연을 맺은 것.
“단무장으로서 전 안무자의 돌출행동으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1주일에 2번씩 서울로 올라가 인간문화재인 이매방 선생님께 춤을 배웠다. 올라가서 3시간 동안 춤을 추고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는 청주로 내려오는 생활을 계속했다. 또 단무장의 주업무인 기획쪽 일을 익히기 위해 역시 서울을 오르내리며 공부를 하는 등 병이 나기 전까지 정말 힘들게 살았다.”
지난 8일 남기균씨는 문화예술체육회관측에 시립예술단원 위촉기간 종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서류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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