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순 _ 청주시 금천동

밖이 시끄럽다. 또 주차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진 모양이다. 남의 건물에 주차한 사람이나 건물 관리인이나 서로 양보하면 그만인 일인데, 핏줄 세워가며 악다구니에 삿대질까지 더 이상 남의 이목은 안중에도 없다. 20년을 청주에 살면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채 몇 년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사람 좋다던 청주의 모습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제 청주도 각박해졌다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간혹 친구들과 안주거리 삼아 지방에 살기 때문에 좋은 점들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청주에 살면서 좋은 점은 시내 한복판에 살면서도 고개만 들면 보이는 늘 푸른 우암산 자락과 양손을 잔 삼아 떠 마셔도 괜찮을 것 같은 무심천이 때 묻지 않은 풍경으로 곁에 서 있다는 점이다.

고층건물과 매연에 묻혀 사는 서울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을 매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넉넉하고 후덕한 인심. 간혹 다른 지역사람들로부터 엄청 느리고 순하다며 멍청(?)도라는 오명을 듣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이 자연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생긴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친구는 이렇게 청주의 자연과 이웃들의 고운 마음을 자랑삼는 것에 늘 불만을 가졌다. 서울 놈들은 지방에는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는데, 그깟 청풍명월이니 미덕이니 떠들면 뭐하냐고,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냐고 말이다. 하긴 지방 어디에 청풍명월 아닌 곳이 있으며, 인심 좋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내 짧은 생각에는 그래도 돈 한 푼 안 되는 것일지라도 그러한 미덕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얼마 전 서울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서울 초입이라 예전에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주차할 곳이 마땅찮았다. 아파트 단지 주차라인에는 동호수가 적혀 있었고, 경비원은 당장 시비라도 걸 듯 한 표정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상가며, 주택가며 쇠사슬에 폐타이어로 주차금지를 알리고 있었으니 소심한 나로서는 감히 주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주차타워에 주차를 했다. 약 3시간 후 일을 보고 나왔는데, 세상에 주차 요금이 1만5천원. 촌놈이 어안이 벙벙해서 물어보니 기본 30분에 2000원, 10분추가 당 1000원이란다. 그저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고스란히 1만5천원을 물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서울의 아파트 경비원과 주택가의 폐타이어, 웃음기 없던 주차요금 징수원의 무표정이 오버랩 되면서 ‘참 서울은 살만한 곳이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청주에 사는 것이 참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청주의 풍경도 낯설다. 눈만 돌리면 보였던 녹지 공간 대신 아파트가 올라가고 이렇게 골목마다 자신의 이기심을 앞세우는 소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변해도 이렇게 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대도시와 닮아도 이렇게 닮아서는 안 되지 싶다. 우격다짐하듯 소리치지 않아도 서로 미안해하며 양보했던 예전의 모습으로, 청주사람들의 그 후덕하고 넉넉한 마음이 다시 거리에 넘쳐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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