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충남외고에 257억원, 한화-북일고 국제반 개설 등
인근 천안·아산 선택적 집중지원… 충북은 ‘무풍지대’

현대백화점 그룹(이하 현대)의 서원학원 인수 시도가 일단 무산된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지역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속내를 시원히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의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실질적 이해 관계자인 학내 구성원(교수·학생)들 역시 인수 시도 무산 직후에는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박인목 이사장의 퇴진과 현대 측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 대기업이 육영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공헌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충남 아산·탕정에 2008년 개교한 충남외고. 삼성은 공립인 이 학교의 부지 및 기숙사 등 257억원 상당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일단 대기업에 대한 ‘무조건 반사’에 가까운 부정적 시각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현대의 서원대 인수 시도와 관련해서도 이른바 ‘돈놀이’나 ‘땅장사’를 할 수도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돈놀이 주장은 ‘현대가 1차적으로 채권 인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현 재단이 학원을 넘길 의사가 없다면 학원 인수가 불가능하게 되고 결국 현대가 채권을 가지고 이자놀이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땅장사 주장은 좀 더 진전된 시나리오다. ‘현대가 채권 인수에 성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단까지 인수한 뒤 현재의 학교 부지를 팔고 외각으로 이전할 경우 투자한 돈은 충분히 회수하고도 남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대 관계자의 반응은 한마디로 말해 어이없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 계열사인 HCN충북방송의 안남영 본부장은 “서원학원에는 산하 5개 중·고교도 있다. 중·고교까지 외곽으로 이전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백화점은 호감(好感)을 먹고사는 사업이다. 청주에서 곧 백화점을 운영할 기업이 회사 이미지를 구기는 행동을 해서 무슨 득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평준화-특성화는 두개의 수레바퀴
이에 반해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 심리도 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도 있지만 굴지의 대기업들이 적어도 육영사업에 있어서만은 정부나 지방정부는 엄두도 내지 못할 파격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교육방침이 재정에 있어서 ‘균등지원’, 교육원칙에 있어서는 ‘평준화’라면 기업은 교육에 대해서도 투자의 개념에서 선택적 ‘집중지원’, ‘특성화’를 꾀하기 때문에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는 얘기다.

청주에서 특목고 진학, 해외 유학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사설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K원장은 “공교육이 평준화에 맞춰져 있는 것은 지당하다. 하지만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경쟁력도 필수다. 충북은 그런 점에서 너무 뒤쳐져 있다. 다른 시·도가 생각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충북의 행정 마인드는 거북이걸음에 불과하다. 타 지역에서 기업이 특성화된 인재양성에 기여한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K원장이 예로 든 것은 인근 충남 천안과 아산. “지난 3월에 아산·탕정지구에 문을 연 충남외국어고등학교의 경우 공립학교임에도 아산·탕정에 LCD사업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에서 부지매입과 기숙사 건립비 등으로 무려 257억원을 무상 제공했다”는 것이다. K원장은 또 “한화그룹의 육영재단인 북일학원 소속의 천안 북일고는 2009년부터 국제반을 운영하는데 미국의 아이비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수준의 학생들을 모집해 석·박사 비용까지 1인당 1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선의 사회공헌…시각을 바꿔보자
물론 삼성이 충남외고에 거액을 희사한 것은 자사 임직원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인프라를 제공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서울 인근에 거주하는 연구진과 가족들의 거주지를 사업장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충남외고는 6000세대에 달하는 삼성 임직원 전용 아파트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남외고가 거둔 인재 흡인효과는 놀라울 정도다. 전체 합격자의 65%가 충남 연고인 반면 35%는 타 시·도에서 몰렸는데, 충남이 119명에 이르는 반면 경기도가 31명, 충북도 10명에 달했다.

서원학원 산하 고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 Q씨는 “전국의 외국어고등학교들이 모두 특목고로 자리를 잡았는데 청주외고의 경우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다”며 “청주외고 개교 이후 2~3년 동안은 우수 학생들이 지원했다는 점에서 교육행정의 닫힌 마인드가 아쉬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Q씨는 또 “충북도가 투자유치 15조원을 돌파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지역사회에 공헌하려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대기업이 서원학원을 인수하려다가 포기했다는 보도를 듣고 대학도 대학이지만 교육여건이 너무나 열악한 산하 중·고교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기대했는데 너무 아쉽다”고 토로했다.

현대백화점 “청주랑 친하고 싶어”
‘친(親)지역’ 전략은 최고의 마케팅 전술
지역 연고 경청호 부회장 ‘입김’도 작용

현대백화점 그룹(이하 현대)은 청주지역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마케팅 전략이다. ‘현대백화점 그룹 사회공헌활동 in 청주’라는 문건에도 “사회공헌활동은 회사홍보와 지역친화전략의 하나로 지역발전에 기여해 친 지역, 친 고객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대는 2010년 청주 대농지구에 백화점을 개장할 예정이다.

▲ 경청호 현대백화점 부회장

그렇다 치더라도 현대의 사회공헌은 유별나다. 2007년에는 9억 5900만원이 아동복지, 청소년활동, 장애인복지, 장학사업 등에 지원됐다. 2007년 사업내용을 살펴보면 청주대 영상미디어센터, 어린이 축구교실, 청주맹학교 프로그램 지원, 지역아동센터 도서지원 등이다. 현대예술상(3000만원), 온누리지역아동센터(이주여성 아동센터·3000만원), 경실련 정도대상 지원(2000만원)은 연속사업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사실 지역출신인 경청호 현대백화점 부회장(사진)이 있다. 경 부회장은 청주고(44회), 청주대(경영71)를 졸업했다. 경 부회장은 1975년 현대시멘트에 입사했으나 1978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겨 승진을 거듭한 끝에 2007년 12월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현대가(-家)의 정지선(37) 회장이 최고경영자임을 고려할 때 경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경 부회장은 2007년 4월 청주대에서 열린 명사초청강연에서 “지방대 출신이라고 기죽지 않고 더 열심히 뛰었다. 명문대 출신은 연줄과 간판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았다. 줄이 없어서 오히려 견제를 당하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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