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복 호죽노동인권센터 노무사

오늘은 2008년 5월 20일이다. 독자들께서는 시점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날수를 기억하시기 바란다.

이랜드(뉴코아·홈에버)  334일, 기륭전자 1001일, KTX 811일, 코스콤 252일. 이 날수는 모두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금껏 파업을 하고 있는 날수이다. 그런데 사실은 파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회사 밖으로 쫓겨나서 길거리에서 천막을 쳐놓고 살고 있는 것이므로.

천막농성, 단식농성, 여성들의 삭발농성, 점거농성, 철탑고공농성. 그들은 하나 같이 안 해본 것이 없다. 그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청주에서도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동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하나같이 계약직이거나 파견되어 일하던 파견노동자들 혹은 용역회사를 통해 들어온 노동자들 즉, 비정규직이다. 보통 정규직의 노동조합이라 하면 회사와 탁자 앞에 마주보고 앉아 교섭을 하고 그러다 원만히 타결이 안되면 단체행동도 하다 노사가 합의를 하고 다시 생업에 복귀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교섭 탁자 앞에 마주볼 상대방이 없다. 실제 일을 시키고 지휘감독을 한 사업주는 자기는 직접 채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주가 아니므로 교섭에 응할 수 없다고 한다. 혹은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되었고 재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더 이상 당신과 우리 회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근로조건과 고용문제에 관해 가장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곳에서 자기들은 사업주가 아니라고 하니 비정규노동자들은 도대체 누구와 자신의 고용에 관하여 교섭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이유로 비정규노동자들이 고용권한을 갖고 있는 사업주와 교섭 한번 하기 위하여 혹은 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하여 몸부림쳐온 시간은 길고도 고통스럽고, 그들이 택하는 방식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절박한 것이다.

그런데도 비정규노동자들의 외로운 싸움은 잊혀져가고 있고, 그들이 이 세상과 소통하려는 희망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우리 사회 전반이 비정규 노동의 심각함을 절감하고 그 문제가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앞으로 한동안 비정규노동자들의 극한적인 단식과 고공철탑 농성은 계속될 것이다.

청주대학교에서 근무하는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의 용역계약 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다른 용역회사가 들어올 경우 계속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문제에 대하여 노동조합이 교섭을 하자고 요구를 하는데도 자신들은 사업주가 아니므로 의논할 필요가 없다며 계속 교섭을 거부 중이라고 한다. 노동조합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고용승계 하나를 보장받기 위하여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

이미 노동자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일이 아니다. 그들이 택하고 있는 극한적인 수단에 비하여 그들의 요구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것이고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 것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제는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소통방식에 의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여야 한다. 아무쪼록 청주대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올 한 해를 길거리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되는 일이 없기를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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