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운전자 뺑소니범 몰려 50일 면허취소
운임비·변호사 선임비·정신적 피해 '엄청나'

관할청의 섣부른 행정처분이 얼마만큼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뺑소니 사범으로 몰린 한 화물차 운전자는 확정판결 이전에 충북경찰청이 자동차운전면허를 취소하면서 무려 50여 일 동안이나 생업을 중단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또한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 하면서 적지 않은 정신적 피해까지 입었다. 이 운전자는 기자와의 첫 전화 통화에서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하다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음성의 한 폐기물처리업체는 조합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명 조치 당하면서 음성군청이 일방적으로 영업허가까지 취소해 사업상 큰 손실을 입었다. 음성군청은 “관례상 조합 제명 조치는 사실상 영업허가 취소를 말 한다”고 해명했다. 당시 해당 업체는 환경 분담금으로 이미 1700만원이나 관할 행정기관에 예치해 놓은 상태였다. 황당한 것은 해당 업체를 제명한 조합이 정관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제명 조치한 사실이 청주지법 행정소송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영업허가 취소를 되돌리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 충북 경찰청이 혐의를 부인하는 화물차 운전자의 운전면허를 뺑소니 범죄를 이유로 취소하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해당 운전자는 항소심 재판까지 무죄 선고를 받았다.
뺑소니 화물차 운전자 두 번의 무죄
충북 영동에 사는 화물차 운전자 A씨(46). 그는 지난 2006년 10월 13일 오후 7시 55분께 영동군 양강면 묘동리 19번 국도를 학산 방면에서 영동 방면으로 시속 70km로 달리다 자전거와 함께 넘어져 있던 P씨를 들이받고 적절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채 도주한 혐의(뺑소니)로 경찰에 구속 기소됐다. 경찰은 당시 화물차 좌측 바퀴에서 숨진 P씨의 혈흔이 발견된 사실과 검안의의 소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의뢰서를 바탕으로 A씨를 유력한 뺑소니 사고 용의자로 특정 지었다.

검찰은 “당시 아내인 K씨와 동승하고 있던 A씨는 선배인 G씨 부부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한 A씨의 선배 G씨는 이 같은 사실을 진술하지 않았다”며 “이는 A씨가 P씨를 들이받고 도주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동지원 이형걸 판사는 지난해 10월 4일 “피고 A씨의 차량 감정 결과 외부손상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선행사고로 숨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범행을 충분히 입증할 수 없다”며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원심은 사실을 오인한 위법성이 있다”며 같은 해 10월 10일 항소했다.

이에 청주지법 1형사부(재판장 석동규 부장판사)는 지난달 2일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경찰에서부터 원심에 이르기까지 한 결 같이 사건 당일 70m 전방에서 하얀 물체를 발견했고, 사고 지점으로부터 5m 전방에서 2차로 위에 넘어져 있던 자전거를 발견하고 차량을 우측으로 돌려 피했다.

다시 피해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옹벽 사이 공간으로 피해서 지났다고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며 “검사는 피해자의 머리를 피해 옹벽 사이 좁은 도로로 지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론했으나 실험결과 가능했던 점과 바퀴의 혈흔이 반드시 피해자를 충격하거나 역과 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묻어날 수도 있는 점을 볼 때에 증거불충분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적법하다”고 밝혔다.

지켜지지 않는 무죄추정의 원칙
결국 A씨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 사이 충북경찰청이 자동차 운전면허(대형)를 취소했다. 이는 A씨에게 생업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피의자 인권을 고려해 법원으로부터 형이 확정되기(유죄가 인정되기) 이전까지 무죄로 보아야 한다는 현행법에도 위배되는 조치다.

실제 A씨는 형사사건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내려지기 전인 지난해 3월 12일 관할 행정청인 충북경찰청으로부터 1종 대형 운전면허를 취소당한다. 이는 항소심 사건 결과가 나오기 전 1년 전에 벌써 관할청으로부터 운전면허 취소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영동 경찰서는 “통상적으로 운전면허 취소는 50일간의 임시면허 발급 운행 이후 취소가 이뤄진다. 피의자의 경우 뺑소니 사망사고로 벌점 160점이 초과돼 취소된 사례다. 형사사건과 행정처분은 각기 달리 진행되지만 피고의 경우 형사사건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사례다.

형사사건에 대해 다툼이 있고 확정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동차운전면허가 취소된 것은 범죄차량 운전자의 운행을 취소해 제 2의 범행을 방지한다는 차원이 강할 것이다. 다만 형 확정 이전에 운전면허가 취소돼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 대해선 절차상의 문제가 있는 듯 해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A씨는 지난해 4월 13일 청주지법 행정부(재판장 어수용 수석부장판사)에 운전면허취소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같은 해 5월 1일 직권으로 A씨에 대해 관할청인 충북경찰청이 내린 운전면허취소 처분에 대한 효력정지를 인용했다.

이유는 “A씨의 생업인 운전면허를 취소할 경우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한다”는 것과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뺑소니 사고에 대한 피해자가 혐의를 한 결 같이 부정하고 아직 확정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 같은 행정 분쟁은 1년 만인 올해 5월 1일 결국 청주지법 행정부(재판장 어수용 부장판사)가 운전면허 취소처분을 취소하면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형 확정처분까지 효력을 정지하는 조건이다.

운전면허 취소 50일 어디서 보상?
A씨는 뺑소니 교통사고가 발생한 2006년 10월 13일로부터 5개월여 만인 지난해 3월 12일 관할청인 충북경찰청으로부터 1종 대형 운전면허가 취소됐다. 이는 형사사건이 접수된 같은 해 6월 1일보다 3개월여 앞선 결정이다.

실제로 한 결 같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부인하던 A씨는 같은 해 10월 4일 1심 재판부로부터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죄'를 얻어낸다. 1심 재판결과가 나오기 7개월 전부터 화물차 운전자 A씨는 운전면허가 취소돼 생업에 지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A씨의 경우 지난해 3월 12일 운전면허가 취소된 이후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50여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청주지법 행정부가 직권으로 취소효력을 정지해 화물차 운전이 가능했다. 이에 대해 영동경찰서는 “보통 운전면허 취소 이전 50일간 임시면허를 발급해 형이 확정되기 전 운행이 가능하도록 하는데 A씨의 경우 운행을 하지 못했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충북경찰청 관계자는 “범행 이용차량 운전자나 뺑소니 사망사고 운전자의 경우 제 2의 범행을 우려해 당연히 취소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 등 절차상 문제는 인정되지만 방치할 경우 제 2의 범행이 발생하는 우려를 낳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충북 법조계 한 관계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 법질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피고는 누가 뭐래도 50일간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형이 확정될 경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충북경찰청은 A씨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린 청주지법 항소심 재판부의 결과에 대해 불복하고 상고했다. A씨는 “사실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 것은 사실이다. 적게는 하루 운임 비 5만원에서 20만원까지 50여 일 동안 250만 원 이상을 손해 봤다. 변호사 선임비도 적지 않다. 특히 뺑소니 사범이라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이나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확정 판결이 날 경우 적절한 대처를 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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