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오 스미코씨 전 청주대학교 일문과 교수

한국과 일본, 이해가 선행되면 가까와 질 수 있다
토오 스미코 할머니(83세)가 동경시청에서 일하던 성일훈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은 1940년 이웃에 살던 친척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그후 점점 만남의 횟수가 많아지고 가까와졌는데 이 만남은 사랑보다는 시대의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으로 계속해서 빠져들게 했다. 양가측 부모님들은 당연히 반대를 했고 결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스미코 할머니는 그 시절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진실하나면 다 통하게 돼 있어요. 그거 하나면 모든게 해결되요. 처음엔 반대하던 부모님들께서 결국은 모두 허락을 했어요”
부모의 허락을 받아낸 후 일본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됐고 스미코 할머니는 교편을 잡게되었다. 결혼후 5년뒤인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는데 스미코 할머니는 조국을 찾아 귀국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오게 되었다.
양국 국민 사이에는 골이 깊던 시절인지라 걱정이 앞섰지만 남편을 믿고 바다를 건넌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자 외아들인 남편의 집안 위치로 인해 반벙어리 상태에서 맏며느리의 감투까지 뒤집어 썼다.
기자가 “한국의 시어머니를 둔 맏며느리로서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스미코 할머니는 “시댁식구들 모두 훌륭한 분들이었어요. 저를 이방인으로 대우하지 않았어요 ” 라고 회상하면서 시댁식구와 남편에 대한 공경심을 표했다.
스미코 할머니는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 양국민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스미코 할머니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주국제친선교류협회에서는 일본의 나가노현과 청주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홈스테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홈스테이프로그램’이란 청주시에서 나가노현으로 관광을 가거나, 나가노현에서 청주시로 관광을 오게되면 소개받은 가정집에서 기거하며 문화와 풍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체험프로그램이다.
스미코 할머니는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에 와서 명승고적이나 둘러보고 호텔에 머물다 돌아간다면 한국에 대해 알수 없어요. 며칠씩 가정집에 기거하면서 생활을 접해봐야 한국의 문화를 알수 있어요. 문화와 풍습을 배우고 돌아가게되면 친 동기간보다 돈독한 우애가 생기게 되요. 일본사람들은 한국이 얼마나 전통이 깊은 나라인지 훌륭한 나라인지 알아야 해요. 일본사람이 한국에 대해서 알게되면 일본의 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가서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또한 한국도 일본을 무조건 나쁜 나라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일본에도 얼마나 좋은 사람이 많은지 알아야 해요” 라며 두나라가 서로 아는 일에 힘쓴다면 양국관계는 호전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스미코 할머니는 작년 일본 교과서 문제로 온나라가 시끄러울 때 나가노 현 신슈국립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기자들도 취재차 강의를 들었고 한국역사에 대해 무지한 질문을 했다. 스미코 할머니는 “당신들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 당신들이 한국의 역사를 아느냐” 고 되물었다.
“기자들은 진실을 밝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독서를 많이해서 아는게 많아야 돼요. 그래야 기자의 위엄이 서는 거예요. 또한 상대방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알고 그것을 질문해야 해요. 그러려면 독서 많이해야 해요” 라며 기자의 사명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힌뒤 “그러나 한국에서는 너무 진실만 말하면 감옥에 가고 핍박당하고 했으니까. 진실을 말해도 지혜롭게해야한다” 며 과거 언론탄압이 심하던 시절을 상기했다.
현재 스미코 할머니는 ‘전세계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서로 이해하게 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때문에 스미코 할머니의 삶의 방향은 모두 이해가 선행될 수 있도록 맞춰져 있다. 차 대접에도 일본과 한국의 관계개선을 위한 스미코 할머니의 배려가 숨어있다. 스미코 할머니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배가 불러도 꼭 차를 마셔야 한다. “이 차는 건강에 좋아요. 감기에도 안걸리고” 라고 권하는 스미코 할머니의 정성을 마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구기자차를 대접하고 왕래가 많고 일본에 대해 이해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본 차를 대접한다. 스미코 할머니는 기자에게 “일본차를 대접하면 안먹을 것 같아서 감기에 좋은 차를 주는 것”이라며 한국의 구기자차를 권했다. 스미코 할머니는 처음 구기자차를 시작으로 해서 나중에는 일본의 향이 가득한 일본차를 대접하게되고 일본을 이해하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스미코 할머니는 소일 삼아 유화를 그리고 있는데 작품을 탐내는 사람이 많아 정작 당신의 집에는 작품이 한점도 남아있지 않다.
아들 6형제를 둔 어머니

올해 83세가 되는 할머니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것을 빼면 우리의 할머니들과 다를바 없다. 징그럽게 자식을 많이 낳던 우리 할머니들처럼, 아들 6형제를 두었으며 6.25전쟁을 겪었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먹일 걱정 입힐 걱정하며 살아온 삶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나이가 들면 지난일을 기억하며 산다는데 가난 때문에 스미코 할머니는 기억할만한 사연 조차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자식들이 6형제다보니 남들 다니는 대학에는 모두보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어요. 저희는 하루하루 때꺼리 걱정하면서 살았어요. 요즘들어서는 엄청부자가 된 것 같아요. 먹을 걱정안하니까. 바깥양반이 청주농고 교감으로 있을 때 6.25가 터졌어요. 아이 넷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왔어요. 먹는 것만 해결할 수 있으면 복으로 알고 열심히 일해야 돼요.”
스미코 할머니가 일본의 친정으로 가게되면 친정식구들에게서 ‘뭐하고 사냐’ ‘뭐먹고 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단지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 빼면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그들 눈에는 꽤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 때 할머니는 배불러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배를 두드렸다. 그러면 모두 잘 사는줄 알고 속아 넘어갔다. 일본에서는 중·고등학교 교장이면 굉장히 잘사는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교원들이 물질적으로 비교적 넉넉한 편에 속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스미코 할머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예요. 온 지구사람이 다 서로를 알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게 제 소원이예요” 라며 “진실하나면 모두 이룰수 있어요” 진실이 스미코 할머니의 소원을 이룰수 있는 방법임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스미코 할머니가 돌아가신 성일훈 할아버지와 결혼 할 수 있었던 방법이 진실이었던 것처럼.

“일본에도 정말로 좋은 사람이 있다”

방문자들은 문을 나서기전에 차 말고 또 하나의 선물을 받게 된다. 스미코 할머니가 평생동안 간직하고 살아야할 격언을 빛바랜 도화지에 적어주는 것이다. 일본어로 적어주는 것이어서 일본어를 모르는 까막눈에게는 무용지물이겠지만 스미코할머니는 차근차근 설명을 덧붙인다. 차를 마시면서 스미코 할머니를 대하다 보면 그것이 일본어로 써진 문구일 망정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된다. 스미코 할머니를 대할 때 느끼는 외경심때문이다.
취재진을 앞에 두고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호되게 꾸짖고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타일러라’는 문구를 설명하는 스미코 할머니를 보면서 “일본에도 정말로 좋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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