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산수과목이 어느날 ‘수학’으로 바뀐 것을 보고 의아해 했던 경험이 생생하다. “기본 셈법을 다루는 산수를 굳이 수학이라고 할 필요가...” 아무튼 이런 생각이었는데 사실 수(數)를 다루는 학문은 난이도와 상관없이 수학이라고 하는 게 옳다고 느끼면서도 고정관념은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기본적인 셈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일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이 발생하는 것을 체험하면서 “아하! 교육부가 이래서 산수를 어려운 수학이라고 했구나”하고 무릎을 치게됐다.
고스톱이나 포커 도박판은 상식적인 셈법이 통하지 않는다. 도박이 끝난 뒤 돈을 잃었다는 사람의 손실 총액과 땄다는 사람의 남는 돈을 상쇄하면 ‘0’이 되지 않는 경우가 백이면 거의 백인 때문이다. 그래서 ‘거울보고 혼자 고스톱을 쳐도 돈은 빈다’는 우스개 ‘도박판 셈법’이 나왔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청주에는 이 ‘고스톱 판의 셈법’이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사직 주공 아파트 재건축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이 그렇다. 믿거나 말거나 그렇다. 그러니 이해당사자는 물론 관측자들까지 혼란에 빠뜨리게 하고 있다.

‘A조합의 소속 조합원수 2540명+B조합 2200명+C조합 805명=x.’ “x는?” 잘난 척 “5545명”이라고 하면 ‘땡’이다. 진짜 답은 2850명이다. 어찌된 일일까. 여기부터 저차원적이지만 방정식 문제, 즉 수학 영역으로 들어간다.
재건축 조합은 조합원의 80%이상 동의가 전제돼야 설립인가가 이뤄진다. 그런데 총 조합원수가 2850명인 사직 주공에는 3개의 조합이 설립돼 있다. 이들 세 조합은 서로 법적 설립요건을 갖추기 위해 경쟁해 왔는데, 이 과정에서 조합원 숫자가 부풀려 졌거나, 아니면 이익을 최대한으로 보고싶은 조합원들의 집단적 심리가 조금이라도 나은 사업 조건을 제시하는 쪽으로 이리저리 몰리며 동의의사가 중복된 때문이다. 기본적인 셈법이 도통 통하지 않는 기이한 일은 이래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직 주공 재건축 사업이 조합간 갈등을 기저로 한 세 불리기 경쟁, 이로 인한 끝없는 소모전, 조합간에 물고 물리는 잇딴 소송(조합과 청주시간의 소송도 있다)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숱한 파열음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주시는 조속한 사업추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행정재량권을 내세워 지난달 26일 특정조합에 대해 설립인가를 내주는 결단을 내렸다고 하지만 주민갈등을 외과적으로 강제 미봉하지도 못한채 강력한 비판과 반발의 역풍을 맞고 있다.

탈락한 조합들이 연합전선을 형성, “청주시를 상대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투쟁하겠다”고 나서는 폼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사태가 이처럼 복마전의 상황으로 치닫는 데에는 주민을 갈등의 국면으로 밀어부친 경쟁관계의 조합들과 배후에 있는 대기업 시공사들의 욕심, 그리고 청주시의 이해하지 못할 조급하고도 편파적 행정처리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기본적인 셈법조차 통용되지 않고 있는 사직 주공 재건축 사업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고도의 건축공학 기법과 수학외적인 영역의 문제인 ‘주민 화합’을 기초로 해야만 할 고층의 거대 아파트가 과연 순조롭게 지어질 수 있을까 회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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