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무설비지구 지정 16년간 개발 발목

청주서부권 개발의 요지로 평가받고 있는 비하동 유통업무설비지구가 10년이 다 되도록 사업의 윤곽을 그리지 못한 채 표류할 우려를 낳고 있다.
사업주 측은 최소한의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마트 입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청주시는 재래시장 등 기존 상권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하동 일대 12만3215㎡가 유통업무설비지구로 지정된 것은 지난 1992년. 이 지역은 화물터미널과 시내버스 회사, 현대자동차(당시 기아자동차) 부품 물류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사업주와 지자체가 줄다리기를 하며 세월만 낭비하는 사이 화물터미널 등 기존 시설들은 구체적인 정비나 개발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재산권 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등 선의의 피해 마저 발생하고 있다.

전체 부지중 5만여㎡에 대해서만 대형마트와 산업자재지원상가 등으로 1차 조성한다는 기본계획만 세웠을 뿐 나머지 부지에 대한 계획은 전무하다. 더욱이 1차 조성계획이 세워져야 이에 맞춰 나머지 계획도 세울 수 있는 상황이어서 유통업무설비지구 지정이 오히려 도심개발을 가로막고 있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대형마트 외 가능한 시설 없다’
유통업무설비지구는 관련 업종을 집적화 해 경쟁력을 높이고 도시계획적으로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지정된다.
이 곳에 설치가 가능한 시설도 대규모 점포와 전문상가단지, 농수산물 유통시설, 화물운송 관련시설, 항만·철도시설, 창고, 축산물 보관장, 자동차 출고장 등이다.

또한 건축물 중 판매시설이 가능하며 도매시장, 소매시장, 대규모 상점 등이 이에 속한다.
문제가 되는 대형마트는 판매시설로 시장과 백화점, 쇼핑센터 등과 함께 소매시장에 포함되는 것이다.
사업시행자인 (주)중앙산업개발과 (주)리츠산업은 민간개발로 조성되는 유통업무설비지구에 대형마트를 배제한다면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업주 측 관계자는 “민간개발은 어느정도 사업성이 맞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설치가능한 시설 중 현실적으로 이를 충족할 만한 것은 대형마트 외에 없다. 나머지 시설은 이미 운영되고 있거나 유치가 불가능하다. 특히 쇼핑센터나 소매시장 등은 도저히 사업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대형마트를 제외한다면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주시의 대형마트 불가 입장은 매우 단호하다.
사업주가 지난 2005년 기존계획의 소매시장을 대형할인점으로 변경, 충북도교통영향평가심의에서 조건부가결 됐지만 지난해 청주시도시계획위원회에서 이를 불허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시 시는 “재래시장 등 기존 상권과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고 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하여 시군별 인구 15만명당 1개소 입점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소매시장에서 대규모점포로의 변경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업주 측이 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를 취하, 기존 계획인 소매시장을 내용으로 인허가를 추진하고 있다.

사업주 측 관계자는 그러나 “청주시의 대형마트 불가 입장에 따라 일단 소매시장으로 인허가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사업성을 확보할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혀 대형마트 입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사업주 대형점 자금 조달
청주시의 대형마트 불가 입장에도 불구하고 사업주 측은 이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10여년 동안이나 사업을 추진하던 중앙산업개발이 자금난으로 리츠산업과 공동사업으로 전환한 뒤 400억 이상을 토지매입비 등으로 투자했는데 상당부분을 대형 유통기업으로부터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업계 관계자는 “어는 누가 검토하더라도 이 부지에 대형마트 만한 사업을 찾기 힘들 것이다. 유통업무설비지구에 맞는 시설이 한정돼 있는 만큼 사업주 입장에서는 애초부터 할인점을 염두해 뒀을 것이다. 더욱이 유통업체로 자금지원을 받아 토지를 사들였다면 청주시의 불허 방침에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사업성을 충족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이미 추진한 과정에서도 대형마트를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형마트 불허라는 청주시의 입장은 좀처럼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이미 도시계획위원회를 통해 불가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이를 번복할 수는 없다. 재래시장과 기존 상권 보호 등 공익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며 충북도 또한 이미 이런 내용의 지침을 통해 대형마트 수를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도시시설 지정후 사실상 부지 방치
대형마트 실랑이 하는 사이 재산권 행사 못해

청주 비하동 유통업무설비지구 1차 사업부지 5만㎡는 전답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 사업주가 매입해 현재는 경작하지 않는 맹지로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부지를 제외한 7만2500㎡에 대해서도 조성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소유 옛 기아차 부품 물류센터는 폐쇄된 채 흉물로 변하고 있고 화물터미널도 그 기능을 상실, 주차장과 화물업체들의 사무실로 사용되는 게 고작이다.

이곳을 유통업무설비지구로 지정한 것도 이들 시설들을 정비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차 조성계획이 지자체의 불허 입장에 막혀 표류하면서 재산권이 침해되는 등 되레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화물터미널 관계자는 “화물터미널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2만㎡에 불과한 규모를 늘리고 저장소와 적하시설 등도 갖춰 화물처리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 유통업무설비지구로 지정한 것도 이런 필요성이 반영됐기 때문일 테지만 지구로 지정된지 16년이 흐르도록 무엇하나 변한 것이 없다. 더욱이 인근 대농 부지가 미니도시로 개발되고 있는 데도 아무런 계획 조차 세울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영개발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청주시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시정비업체 관계자는 “현재대로 사업주와 지자체가 다른 생각을 한다면 영원히 풀릴 수 없는 사업이다. 청주시가 단체장 의지로 대형마트를 불허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대형마트를 배제한 민간개발이 불가능하다면 시가 유통업부설비지구 조성에 나서 공영개발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막연히 대형마트 불가 입장만 고수한다면 민간업체의 고충만 늘어나고 해당 지역의 개발이나 정비는 요원해 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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