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결혼으로 인연을 맺은 강씨 부부가 24시간의 재회를 접고 청주교도소 ‘부부 만남의 집’을 나서고 있다.
90년 ‘부안 일가족 살인사건’ 20년 형받아, 참회하며 공부하는 모범수
지난 2월 25일, 청주시 흥덕구 미평동 ‘큰 집’ 속의 ‘작은 집’은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부부 만남의 집’으로 불리는 청주교도소 담장옆 ‘작은 집’은 잠가두었던 난방을 다시 켜고 겨우내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하지만 25평 안팎의 그 ‘작은 집’ 주변에도 삼엄한 2중 철책이 드리워져 있었다. 결코 자유의 집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높은 담장밖에 보이지않던 교도소 창밖과 달리 ‘부부 만남의 집’에서는 일반 면회객들의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날 ‘부부 만남의 집’을 찾은 귀한 손님은 강현태(43)·정옥남(가명·41)부부로 지난해 3월 군산교도소에서 옥중결혼해 화제됐었다. 법무부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6박7일간의 특별귀휴를 허가해 주기도 했다. 지난 90년 살인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은 강씨는 이미 2년전에 1차 귀휴를 허가받기도 했다. 10년 수감생활 동안 2번씩이나 귀휴허가를 받은 것은 흔치않은 행운이며 축복이었다. 2000년 9월, 강씨의 첫 귀휴는 SBS다큐프로그램으로 방영돼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고부갈등이 사건의 불씨돼
10년만의 첫 외출에서 그는 자신의 손에 죽어간 아내의 무덤을 찾아 통한의 눈물을 쏟았고 처부모를 만나 용서를 빌기도 했다. 아내와 자식을 죽인 아비로써 늘상 마음을 옥죄고 살았던 강씨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제공해 준 첫 귀휴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뜨거운 통속속에 10년동안 마음을 벼려온 회한의 사금파리들이 걸러지는 듯 했다. 강씨가 ‘일가족 살인’이라는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른 때는 지난 90년 5월. 그의 나이 31세였다.
경찰관의 박봉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2남 1녀의 자식까지 거느린 가장이었다. 전북 부안군 시골마을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강씨는 군복무 직후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서울 소방공무원과 경찰공무원 시험에 동시에 합격한 그는 고향근무가 가능한 경찰직을 평생직업으로 선택했다. 25세에 경찰에 투신한 강씨는 이듬해 승진 아내를 소개받아 이른 결혼을 하게 된다.
다시 1년뒤에는 떡두꺼비같은 아들까지 낳아 행복에 겨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84년 강씨 가족은 예기치않은 승용차 사고로 당해 생후 2개월밖에 안된 아들이 뇌성마비 장애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남모르는 아픔을 감춘채 근무에 충실했던 강씨는 최연소 나이로 경장승진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부간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그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잇따른 자살기도 무위로 끝나
사건 당일, 순찰근무중이던 강씨는 여동생으로부터 인생행로를 뒤바꾸게 한 비운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아내와 어머니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젖갈동이를 머리에 이고 행상을 다니며 우리 5남매를 키워주신 어머니였는데…, 아내와 다툼이 생기면 내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날 아내가 어머니를 폭행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순간 이성을 잃게된 것이다.
평생을 자식들 위해 희생해온 어머니를 생각하니, 더 이상 살 의욕도 없었고…, 차라리 온가족이 동반자살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찰중인던 강씨는 권총을 소지한채 집안으로 들어섰고 아내와 2남 1녀의 자식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턱에 총구를 들이댄채 2발의 실탄을 쏘았다. 현장의 모습은 참혹했다.
아내와 큰아들(7세) 막내아들(1세)이 즉사했고 요행히 총알이 비껴간 딸(3세)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자신에게 쏜 2발의 총탄 가운데 한발은 왼쪽 관자놀이를 통해 눈을 관통했고 다른 한발은 오른쪽 턱을 뚫었다.
총성을 듣고 달려온 이웃들은 중상인 강씨를 봉고트럭에 싣고 병원으로 후송하게 됐다. 하지만 실낱같은 정신을 부여잡은 강씨는 고속질주하는 봉고트럭밖으로 몸을 던져 또다시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첫 귀휴, 아내 무덤찾아 통곡
인명은 재천(在天)이라 했던가, 강씨는 다시한번 자살에 실패(?)했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대수술을 받게 된다. 3개월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군산교도소로 수감된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20년형으로 감형됐다. 사망피해자가 많지만 범행동기가 우발적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 참작됐다. “죄값을 생각하면 하늘을 쳐다보기 부끄러운 처지였지만, 20년동안 15척 담안에 갇혀 산다고 생각하니 참담하기만 했다. 희망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암담한 인생이었다. 이때 교도소 종교위원이신 김용은 목사님을 만났고 기독교 신앙을 정신적 지주로 맞아들이게 됐다. 마음의 안정을 찾게되면서 교도소 생활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게 됐다”
강씨는 인쇄공장에 출역하는 한편 직업훈련생에 입교해 조적기능사 2급, 미장기능사 2급, 광고도장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북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미술도장부문 은상을 받기도 했다. 95년부터 아예 직업훈련생의 조교로 발탁됐고 휴식시간 틈틈이 동료 재소자에게 한문교육을 시키는 훈장(?)을 맡기도 했다. 또한 선도조건부로 석방된 비행청소년을 대상으로 간증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가 머리맡에 적어논 3대 생활신조는 수형생활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1.누구라도 해야할 일이라면 내가 하자 2. 언제라도 해야 할 일이면 지금 하자 3. 지금해야 할 일이라면 더 잘하자

교정수기 감동받아 서신왕래
1999년말 강씨의 인생을 두 번째로 뒤바꾸는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법무부 교정국에서 해마다 공모하는 재소자 수기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게 된 것. 이 수기는 당시 수원교도소에 수감중인던 여성 재소자 정옥남씨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자동차사고를 낸 과실범으로 수감중인던 정씨는 비운의 일가족 살인범 강씨의 이름을 가슴속에 새겼고 출소직후 군산교도소로 편지를 보냈던 것. “이름도 모르는 여자분이 절실한 심정으로 보낸 위로의 편지였는데, 전혀 뜻밖이었다. 감옥생활 10년만에 가족 이외에 편지를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과연 내가 답장을 쓸 자격이 있는가, 고민스러워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
2000년 1월 김씨의 편지가 도착한 이후 옥중결혼을 하기까지 14개월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700통에 달했다. 강씨와 부자인연을 맺은 김용은목사는 두사람의 결혼을 적극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당시 군산교도소장으로 재직중이던 현 청주교도소 최규수소장(59)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내 지난해 3월, 양가의 부모 가족이 모인 가운데 군산 모교회에서 극적인 옥중결혼이 이뤄졌다. 법무부가 강씨의 특별귀휴를 허가해 외부결혼식이 가능했던 것.

700여통 편지 끝에 옥중결혼
신혼부부의 짧은여행을 마친 강씨는 다시 군산교도소로 돌아갔고 지난해 5월 학사고시 준비와 산업기사 자격취득 과정을 위해 청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여기에는 강릉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부인의 면회길을 수월하게 하자는 배려도 깔려있었다. 특히 부인 정씨는 칠순의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딸(14세·중1)에게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건현장의 유일한 생존자인 딸(당시 3세)은 한글을 깨우치면서 교도소의 아버지와 편지연락을 해왔다. 학교공부 중에 모르는 문제를 물어오면 강씨는 교도소안에서 이책 저책을 뒤져 최상의 답변을 만드느라 골몰했다. “사건직후에 병원입원 치료를 받는동안 부모님이 딸아이를 데려오곤 했다. 어느 날인가, 병원에서 머리를 감기고 드라이기로 말려주려는데 아이가 자지러지듯 우는 것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사건당시 권총을 떠올리고 놀란 것이 분명했다. 지금도 그 일을 잊지않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딸아이까지 애를 써주는 정씨가 너무 고마울 뿐이다”
청주교도소로 둥지를 옮긴 강씨의 수형생활은 자타가 인정하는 모범수로 통한다. 자기 징역 살기에도 급급한 감옥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란 쉽지않은 일이다. “학사과정은 법학전공을 택했다. 교도소안에서 법률적 지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재소자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사회복귀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신학을 공부해서 재소자 신앙교화와 법률구조 활동을 벌이고 싶다” 교도소내 한자 훈장이기도 한 강씨는 자신의 아호를 ‘용도(用陶)’로 정했다.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지만 덤으로 사는 인생을 세상에 쓸모있게 살아야 겠다’는 각오로 지었다는 것. 이튿날 낮 12시, 강씨부부는 24시간의 짧은 만남을 접고 다시 긴 이별위해 만남의 집을 나섰다.
/권혁상 기자




부부 만남의 집 전경
청주교도소 전국 최초 민간 후원 ‘부부 만남의 집’ 설립운영-최규수 청주교도소장
법무부가 장기수의 특별 가족면회를 위해 설치하기 시작한 전국 교도소내 ‘만남의 집’은 현재 6개소에 불과하다. 대전, 대구, 광주, ??은 국가예산으로 건립됐고 마산에 이어 청주는 순수 민간 교정위원들의 후원으로 완성돼 그 의미를 더 했다. 지난해 11월 완공한 청주교도소 ‘부부 만남의 집’은 이용출교정협의회장을 비롯한 이현, 한관희, 이철희, 황익화, 원종례, 표동수, 김현남, 채기화, 김정웅, 윤각원, 박영택, 이경구, 정선택, 이현주씨등 15명의 교화위원들이 힘을 합쳐 결실을 맺게 됐다. 이밖에 만남의 집에 필요한 전자제품등 세간은 최병록 교무과장이 지역 독지가들을 발로 찾아다니며 기증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들어 첫 이용자인 강현태씨의 경우 청주 ‘만남의 집’ 개관식을 가진 최규수 소장이 지난해 3월 군산교도소장 재직시 옥중결혼시킨 커플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최소장은 “장기수의 경우 이혼으로 가정파탄을 겪는 경우가 많다. 심리적 안정을 통한 심신교화를 위해 가족과 아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만남의 집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강현태씨가 군산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나갔다. 남은 형기를 건강하게 마치고 하루빨리 사회복귀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씨의 경우 모범수로 행형성적이 뛰어난데다 옥중결혼, 귀휴등 사회복귀에 필요한 제반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돼 조기 가석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장은 ‘징역 20년의 장기수 가운데 만기 4월 10개월을 앞두고 가석방되는 경우를 봤다’고 전했다. 12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강씨의 경우 3년내 가석방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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