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총선 충북표심 왜 야당을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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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총선 충북표심 왜 야당을 택했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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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충북에서 8석 중 6석을 차지하면서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인물을 내세운 현역의원들의 파워가 돋보였다. 반면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단 1석만 건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충청의 맹주 자유선진당은 대전·충남의 압승과 달리 충북에서 1석을 건지는데 만족해야 했다.

4·9총선이 내린 민심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충북지역 정가에 미치는 파장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역대 총선에서 충북은 집권여당 편에 서거나 황금분할을 통해 동·서로 양분된 한국정치의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보기드물게 야당을 선택했다. 그래서 충북의 표심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속설이 이번에도 통했다.

지난 1992년 14대 총선에서 충북은 9개 선거구 중 무려 6곳에서 민자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정통여당 강세 지역임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후 15대 자민련의 녹색바람 속에서도 7석 중 2석을 여당인 신한국당의 김종호, 신경식 의원이 차지했으며 처음으로 호남이 정권을 잡았던 '국민의 정부' 시절 치러진 16대 총선에서는 민주 2, 한나라 3, 자민련 2석 등으로 황금분할을 이루어냈다.

물론 17대 때는 '탄핵역풍'으로 8개 전 선거구를 모두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싹슬이했다.

이처럼 집권여당으로 흐르던 충북표심이 이번 총선에서 돌변한 이유는 무엇인지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낮은 투표율을 들 수 있다. 4년에서 8년까지 착실하게 지역구를 다지면서 표의 결집이 강했던 민주당 후보들 보다 대선 때 보여줬던 이명박 표가 결집되지 못한 것이 한나라당의 한계였다.

당 지지도는 그래도 30% 중반대를 유지해 정당 지지도에서는 가장 높았음에도 민주당 후보들을 잡지 못했던 것은 표의 응집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즉 선거가 인물구도로 이뤄지면서 당 대 당 구도가 형성되지 못했다.

여기에 집권 이후 첫 내각 구성 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하면서 '견제론'이 힘을 얻었다.

사실상 민주당 현역의원들이 내세운 것은 새정부 출범으로 인한 위기감 조성에 머물렀지 특별한 정책적 대안은 없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방조한 결과가 됐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이번 총선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나 '첨단의료복합단지 오송 유치' 등 충북도 등 행정기관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나 대선을 통해 이미 등장했던 지역개발 공약을 재탕했을 뿐 충북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을만한 개발 이슈를 내놓지 못했다.

이와 함께 현역의원들의 인물론이 제대로 먹혀 들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바탕으로 의정활동을 착실히 하고 일을 잘했다는 점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여당 민심을 돌려 놓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런 외형적인 변수 보다는 참패를 자초했다는 점이다.

먼저 공천문제가 꼽힌다. MB측근이니, 이재오계니, 이방호계니, 친박계니에 따라 좌우된 당내 공천잡음이 너무도 오래 유권자들에게 기억됐다. 청주 흥덕 갑에서는 공천번복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대운하도 득이 못됐다. 수혜지역인 충주와 괴산 등 도내 중·북부지역 유권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충북도당은 대운하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이들 지역에서 조차 반대 여론이 우세했다.

선거 막판에는 전국 유세에 나서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표를 대신해 동생 근령씨를 충북선대위원장에 긴급 투입했으나 승리의 구원투수가 아닌 패전 처리용이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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