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8기 채영만, 최연소 장우정, 첫 출마 김서용

출마는 여기까지, 앞으론 후배 양성
7전8기 상당구 출마자 채영만 후보

18대 총선 유세기간 동안 시민들의 눈을 자극한 현수막이 있다. 상당구 기호 7번 무소속 채영만 후보의 ‘7전8기’. 어떤 이는 ‘저 후보 또 나왔네’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채영만이 누구야?’라고 묻기도 한다.

1975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국회의원 출마 4회, 청주시장 출마 2회, 도의원 1회, 그리고 이번 18대 총선까지…. ‘7전8기’라는 말에는 오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채 후보는 8번째라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27세 때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정치인으로서 길을 걸어온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선거를 이틀 앞두고 당선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유권자들이 내 마음을 헤아린다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다음 총선에도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늙었어, 이젠 후배들이나 키워야지”라며 더 이상 출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채 후보는 스스로 평생 야당후보라고 설명했다. 1971년 국민당 후보로 출마한 후 민주통일당, 평민당, 민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채 후보는 “정당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정당이 정책을 내고, 정책선거가 이뤄져야 한다. 철새정치인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18대 총선에서 채 후보는 국회의원 수 1/3 감축, 지방의원 명예직 환원, 노인복지시설 확충, 청주·청원통합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이 되면 의정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한 측근은 “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살아왔다. 최근까지 새벽 거리를 돌며 모은 고물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서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했을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채 후보는 “상당구 180곳의 경로당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분들은 나를 지지했을 것으로 믿는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어려운 이웃을 대변하는 정치가 이뤄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거칠 것 없는 용기로 ‘희망을 봤다’
전국 최연소 출마 민주노동당 장우정 후보

사상 최악의 투표율을 보인 18대 총선, 청년 유권자의 관심이 아쉬웠다. 특히 20대를 대변하겠다며 출마를 결심한 민주노동당 흥덕갑 장우정 후보(25)에겐 젊은층의 투표 외면이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경북 포항 출신인 장 후보가 청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충북대에 입학한 2002년이다. 수업료 1000만원시대를 맞아 시름하는 지금의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걱정도 비싼 등록금이었다. 장 후보는 비교적 등록금이 싼 국립대를 찾아 청주로 오게 됐다.

사회학을 전공한 장 후보는 졸업반이던 2005년 독거노인들에게 반찬과 도시락을 전달하는 ‘따뜻한 밥상’대표를 맡으며 본격적인 사회복지사업에 뛰어들었다.

장 후보는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노인분들에게 큰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말로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대개의 젊은이가 그렇듯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장 후보 역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장 후보는 “민주노동당이라면 함께 힘을 모아 뜻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 후보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20대를 대변하기 위해서다. 그는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해 등록금을 연 가계수입의 1/12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비록 첫 출마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장 후보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청주를 떠날 것도 아니다. 장 후보는 “다음 총선에서 당이 나를 선택할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을 계속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국회의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장 후보는 “국민이 어떤 국회의원을 원하는지 생각한다. 서민과 같은 국회의원, 깨끗한 국회의원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일 뿐 “기죽지 않았다”
민주당 세대교체 선언한 김서용 후보

4선에다 현역 국회 부의장인 이용희 후보를 제치고 통합민주당 공천을 따냈던 보은·옥천·영동 선거구의 김서용 후보는 본선에서 높은 현실의 벽을 느껴야 했다.
김 후보는 그러나 “기죽지 않았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 번의 낙선을 약으로 삼아 다음 총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 후보가 아쉬워하는 것은 복합선거구이다 보니 결국 소지역대결구도로 선거가 진행됐고, 고향인 옥천의 표심이 결국 이용희 후보에게 쏠렸다는 것이다.

김 후보는 “피부로 느꼈던 지지율과 표로 연결된 지지율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다”며 “선거가 막상 자유선진당 이용희 후보와 한나라당 심규철 후보의 양자대결구도로 진행되다보니 막판에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비록 10%대 득표에 머물렀지만 체감득표율은 25~30%에 이르렀다”며 “그래도 세대교체에 대한 희망의 싹을 보았다”고 밝혔다.

김 후보가 그래도 아쉬워하는 것은 민주당 조직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리전력 때문에 개혁공천의 배제대상으로 지목됐던 이용희 후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공천을 지나치게 늦추다 보니 민주당 조직이 결국 이 후보를 따라 자유선진당으로 이동하거나 아예 정지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다음 선거를 바라보며 지역활동에 주력하겠다. 가장 먼저 이용희 후보의 영향으로 고령화됐던 민주당 조직을 30~50대 중심의 젊은 조직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김서용 후보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김홍신 전 의원(보건복지위원회) 보좌관을 시작으로, 보건복지부장관 비서관, 근로복지공단 재정복지 이사 등을 지낸 ‘복지통’이다. 김 후보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정책선거를 제안하며 각종 지역정책을 개발해 공표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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