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규 청주대학 법과대 교수

▲ 정승규 청주대학 법과대 교수
얼마 전 공중파 TV에 초등생 납치 및 성폭행미수 현장그림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나 역시 그 잔혹한 장면을 보고 진저리치다가 저녁식사를 다하지 못하였고, 만약 그 범인을 내손으로 붙잡아 마음대로만 할 수만 있다면 온갖 종류의 ‘해꼬지’를 다 하고 싶을 정도로 적개심이 일었다. 아마도 이러한 감정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함께 느꼈을 것이다.

그때부터 언론은 들끓었고, 수사기관의 늑장대응과 부실수사를 탓하는 목소리가 경향 각지에서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막 임명된 경찰총수와 해당 경찰서장에 대한 인책론이 제기되는가 하면, 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인들은 수사본부를 찾아가 호통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양 하였고, 이를 선거쟁점으로 삼으려는 불온한 수작으로 일관하였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대부분의 비판여론이 경찰의 늑장, 은폐수사에 대한 질타에 집중되어 있는데, 설령 지구대 근무 경찰관의 업무태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점에만 집중하여 비판여론을 유도한다든가, 이를 일반화시켜 모든 경찰관과 경찰조직에 대입하여 꾸지람하고 있음은 잘못된 일이다.

보다 필요한 것은 청소년 성폭력사건을 미리 예방하자는 차원의 사회적 담론이다. 이같은 사건은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한 달 전, 두 명의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사체를 토막내어 내다버린 범인이 검거되었고, 2년 전에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동네 신발가게 아저씨가 살해한 뒤 불태워 버린 엽기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해 만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700여 건이었다.

궁극적으로 사건의 발생 자체을 최소화하기 위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지, 당장 눈앞에 드러난 경찰수사의 허점를 비판하는 일에 몰입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진정 주목하여야 할 점은 ‘범인이 동일 수법의 미성년자 상습강간범으로서 출소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폭력사건들 중 실제로 고소당하여 처벌받는 경우는 오히려 이례적인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 한건의 성폭력사건이라도 엄히 처벌해야 함이 당연하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사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 범인이 과거에 벌인 어린이 성폭력 사건들 중 고소당하여 범죄사실로 드러난 것만 5건에 이르는데, 어떻게 10년의 징역형으로 모든 죄과를 덮고 버젓이 출소하게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유아도착증 환자들이 그 습벽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재범하게 된다는 점은 이미 상식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린이 상습강간범으로 하여금 아무런 감시없이 대로를 활보하도록 한 이 나라 위정자들이 진실로 책임져야 마땅하다.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에 대응한다면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란 것이 민간 경비업체와 협력해 피해 학생을 보호하겠다는 내용, 전자팔찌 착용 제도의 도입 등이지만 그와 같은 미봉책만으로는 범죄 방지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다음 사항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우선 흉악범죄의 습벽있거나 재범의 우려가 현저한 사람에 대하여는 형사처벌 이후에도 사회로부터 일정기간 격리하거나, 국가기관에 의한 관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운용되었던 것이 사회보호법이고,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시행된 것인데, ‘민주화’와 ‘인권’ 바람에 밀려 2005년 8월에 폐지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청송감호소 출신의 흉악범들이 복수심을 간직한 채 이 사회에 그대로 편입되고 말았다. 과잉된 인권보호 때문에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이 공포에 떨어야 할 판이다.

그 다음으로 이 사회에 만연한 온정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 범죄를 증명하고 엄히 처벌하기는 어렵지만 소위 ‘봐주기’는 쉽다. 사기범행으로 수십명 피해자들의 생계가 파탄나고, 모든 편취금을 은닉한 채 ‘배째라’고 버텨도 고작 3-4년 동안 ‘국립호텔’에 다녀오면 된다. 자애로운 형량은 판사의 인기를 높여주고, 변호사의 밥그릇도 채워주지만, 피해자들이 아무리 아픔을 호소한들 돌아올 메아리조차 없다. 그토록 자비로운 형량도 모자라, 특별가석방의 길이 널려있고, 시시때때로 시행되는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초법적 정치수단으로 유용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봐주기 식으로 감화될 수 없는 ‘진짜 나쁜 사람들’이 있다. 공공연히 ‘나쁜 짓’을 하는 이들이 믿는 배경은 바로 이 사회에 만연한 온정주의이다. 한편 민주화에 편승하여 설립된 각종 단체와 기관들은 ‘나쁜 사람들’에게 과잉된 인권을 제공하면서 그들을 비호하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 같은 온정주의와 인권과잉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나마 호소한다. 우리 모두 범죄의 파수꾼이 되자. 스스로의 맘속 깊은 곳에 자리안 온정주의와 귀찮니즘을 물리치고 범죄와 비행을 보는 즉시 신고하자.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에서라도 ‘떼법’이 아닌 원칙과 규범, 그리고 준법을 중시하는 후보자에게 나의 한 표를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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