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오는 3월. 또다시 올 연말. 조흥은행 이전문제가 정부의 무원칙 무소신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연기조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해득실만 고려한 비겁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가 조흥은행 본점의 중부권 이전 약속을 또 다시 뒤집은 데 대해 지역의 반발 여론이 심상치 않게 일고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6일 “조흥은행의 본점 이전문제는 청주와 대전 두 지역의 합의아래 연말까지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밝혔다. 이 금감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지난 연말까지 본점 이전을 종결지었어야 할 정부가 약속을 어긴채 또다시 이전시한을 연기한 것으로 약속이행 의지를 근본적으로 의심케 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98년 조흥은행에 3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맺은 양해각서(MOU)에서 2001년까지 은행 본점을 ‘중부권’으로 이전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결과적으로 지켜지지 않았고, 새해들면서 위약(違約)에 따른 여론 부담을 의식한 정부는 오는 3월에 열리는 조흥은행 정기 주주총회에서 본점 이전문제를 확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최근 이 금감위원장의 본점 이전시한 연기 방침 발언은 무원칙과 무책임한 정책돌변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나기정 청주시장은 설연휴가 끝나자 마나 지난 15일 기자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조흥은행 지방이전 문제가 청주와 대전의 유치경쟁으로 변질되는 등 일관성과 논리가 결여된 채 시간끌기식으로 치닫고 있다”며 “조흥은행 지분의 80%를 소유한 정부가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본점 이전작업을 늦추고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처사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나 시장은 이어 “수도권에 인접하고 교통 및 산업분야에서 우수한 인프라가 구축된 청주에 본점을 이전해 취약한 이 지역의 지방금융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주시는 시금고를 위탁하는 등 충북은행과 합병한 조흥은행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왔다.
청주경실련과 대전경실련 역시 15일 공동성명을 발표, “이근영 금감위원장의 발언은 조흥은행 본점 지방이전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무책임한 행위이며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적 동의나 합리적 절차없이 본점이전 시한을 연장한 것은 국민의 고통을 망각한 작태”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정부와 조흥은행은 본점이전 문제를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오는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지역의 금융계 등에서는 올해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해인데다 현 정권이 이미 임기말 증후군(레임덕)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전과 청주 중에서 한 지역의 손만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선택을 강행하면서까지 정치적 부담을 껴 안겠느냐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빼낸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조흥은행에 뭉터기로 쏟아붓는 대가로 은행과 약속한 본점의 지방이전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주민의 신뢰상실 만큼 더 위험한 정치적 부담은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 임철의 기자




정부가 지역갈등의 격화를 이유로 조흥은행 본점의 이전문제를 백지화 또는 연기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측’을 한 본보 214호 기획기사의 일부.
불길한 예측은 맞는 법?
이전무산 가능성 경고 본보 기사 주목
1월19일자 214호 5쪽 비중있게 보도

지난 6일 이근영 금감위원장의 ‘조흥은행 본점 이전시한 연기방침’ 발표는 그 시점이 매우 교묘하게 짜여진 감을 주고 있다. 지난 6일은 설 연휴를 앞둔 시기로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사회의 긴장과 집중력이 떨어지기 쉬운 때였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정치적 부담이 많은 본점 이전문제를 연기는 해야 겠고, 그래서 이를 공식화하기는 해야겠는데 공식발표의 파장이 너무 클 것 같으니까 타이밍을 절묘하게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뤄진 이 금감위원장의 발언은 설 연휴가 끝난 지난 15일, 그러니까 근 열흘만에야 지역 여론을 자극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김빠진 분위기로 흘렀다. 어쨌거나 이 금감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충청리뷰가 지난 1월 보도한 ‘불길한 예측’의 정확성이 새삼 증명되는 결과로 귀결됨으로써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충청리뷰는 지난 1월19일자 214호 기획기사(5쪽)에서 지역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음모론’을 소개했다.
주로 대전지역에서 제기되고 있는 음모론적 시각을 소개한 문제의 기사 내용은 대략 이렇다.
‘청주 대전지역에서 조흥은행 본점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두 지역간 갈등이 심화되면 정부와 은행에서는 이를 빌미로 본점이전 문제를 무기연기하거나 아예 없던 일로 할지도 모른다. 이런 불길한 예측은 해양경찰청과 태권도공원 사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전시는 지난해 말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 본청의 유치를 거의 확정지었다가 무산시킨 뼈아픈 경험이 있다. 해양경찰청이 본청을 대전으로 옮기기로 거의 확정했지만 부산 목포 등 해양도시에서 반발하자 정부에서는 지역갈등을 이유로 이전문제를 아예 백지화했기 때문이다. 또 진천과 보은을 비롯한 전국의 십수개 지자체가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던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역시 지역갈등 격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부의 발빼기로 무산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본보의 불길한 예측 보도에 결과적으로 정확성이란 귀중한 평판을 선물로 준 셈인 이 금감위원장의 발언을 접하면서도 씁쓰름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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