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 로열패밀리 ‘일반학생과 식단도 달라’
학사반 ‘패거리 문화’ 선배 얼차려 교사도 묵인

언젠가부터 기숙학사가 학교를 대표하고 있다. 거리 곳곳에서 ‘한빛학사 예비반 모집’이라고 써 있는 현수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자녀들 진학에 대해 ‘OO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아니라 ‘OO학사에 들어갔다’는 식의 대화가 오간다.

엘리트 집단인 학사반은 학교의 중심이 됐다. 학급 대표를 비롯해 학교에서 직책을 부여받은 학생들 또한 대부분 학사반이다.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다는 명분아래 학교에서 학사반은 로열패밀리로 인식되고, 학사반에 포함되지 못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피해의식에 빠져들고 있다.

▲ 학사반 학생들은 일반학생들과 구별되는 대우를 받으며 집단 세력화됐다. 상대적으로 일반학생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사진=육성준기자
회사원 김 모씨의 아들은 청주지역 OO고교에 수석입학 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자랑스럽게 ‘OO학사에 들어갔어’라고 말한다”고 대답했다.
회사원 안 모씨는 “한빛학사만 있었을 때와는 또 다른 것 같다. 그 때는 워낙 소수의 아이들만 학사들 들어가다 보니 부럽기도 하겠지만 우리 아이가 한빛학사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마다 학사를 운영하다 보니 학사에 들어가는 못하는 게 창피한 일이 됐다. 친구들과의 모임자리가 꺼려지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기숙학사 무한신뢰
학사반에 편입됐거나 그러지 못한 자녀를 둔 학부모들 모두 자녀의 학사반 편입을 원하고 있었다. 김 씨는 “학사반의 학습효과에 대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신뢰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무한신뢰 속에 학사반의 위치는 더욱 굳건해져가고 있다.

학사반의 학력신장 키워드는 ‘경쟁’이다. 김상열 전교조충북지부장은 기숙학사 운영으로 인해 학생간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지부장은 “대다수의 학생들이 외면당하고 있다. 또한 학사반 학생들도 비민주적인 학사운영 속에 또 다른 희생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 대해 일선학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학교장은 “차별이나 교육기회의 박탈이 아니다. 수준별 학습을 통해 동반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대응했다.
기숙학사를 운영하는 학교에서는 학사반과 차상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화반을 함께 운영하거나 학사만만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방식을 택한다. 기숙학사가 없는 학교도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다.

학사반은 내신성적과 필기시험을 통해 선발하며 6개월마다 시험을 통해 새롭게 학사반에 편입되기도 하고 탈락되기도 한다. 1년간 학사반에 머물다 탈락한 한 학생은 “이러다 잘못되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 학사생활에 불만도 있지만 학교에서 학사반 아이들은 동경의 대상이다. 밀려났다고 생각하니 창피한 마음에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하고 서먹해진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이와는 달리 학사반 운영방식에 대해 거부감이 들어 희망하지 않았다는 박 모군은 “중학교 때는 학사반에 들어가야만 하는 줄 알았다. 6개월간 생활해보니 나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지난해 2학기에는 자진해 학사반을 나왔다”고 설명했다. 박 군은 “우선 엘리트 패거리 문화가 싫었다. 학교에서도 패거리문화를 조장한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선배들의 얼차려 악습이 지속되고 있다. 위계질서를 중요시 해 복도에서 선배를 만나면 90도 인사를 해야 한다. 공부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사반 학생을 대상으로 입학 전인 2월에 적응교육을 위한 수련활동을 실시하고 소위 기강을 잡기위한 신고식을 치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군은 “선배들이 폭력으로 기강을 잡는 것에 대해 선생님들도 모두 알고 있지만 묵인하고 오히려 조장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도 학사반에 있지만 다 같은 학생인데 식당까지 구분해 식사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아이의 말로는 식단도 일반학생과 다르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또 “관리감독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기숙사 안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분명 인권유린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학사반과 일반학생들은 급식비가 분리되어 있다.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 학사반 아이들은 질리지 않도록 가정식에 가까운 음식을 해주는 것이다. 또한 CCTV는 감시라기보다는 학생들의 안전과 관리감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개의 학교에서는 식사까지 구별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학교를 다니는 재학생 김 모군은 “기분이야 당연히 나쁘다. 똑같은 제자고 학생인데 선생님들의 편애가 눈에 보일 정도다. 그나마 일부 학생들은 차별받는 생각조차 못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못하니 그런 대우를 받아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숙학사 운영에 대해 한 학교장은 “학교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에게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이 말로는 전인교육을 외치면서도 당장 서울대에 몇 명을 넣느냐를 따지는 게 현실이다. 일부 학교장들은 학사운영이 불필요하다고 느끼지만 다른 학교에서 모두 운영하고 있는데 경쟁사회에서 학교장의 소신만으로 학교를 꾸려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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