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이 될 것인가 거목으로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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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이 될 것인가 거목으로 남을 것인가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8.03.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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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는 정년이 없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인터넷을 통해 인물 검색을 해보면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1935년생이다. 우리나이로 일흔네 살인 셈이다.

화색이 도는 얼굴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만 놓고 보면 60대라고 우겨도 할 말이 없다. 농투성이로 논밭을 일구며 살아온 촌로들의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이회창 총재는 과연 3전4기에 도전할까? 누구도 알 수 없는 얘기다. 이제 83세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흔셋에 대통령이 돼 일흔여덟에 임기를 마쳤다.

17일 자유선진당에 전격 입당한 이용희 의원은 1931년생으로, 이회창 총재보다도 네 살이나 많은 일흔여덟이다. 한 번 더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면 여든둘에 여의도를 나서게 된다. 그러나 ‘차차기 총선에 또 출마한다면…’이라는 가정도 해봐야 싶을 정도로, 이 의원은 여전히 정열적이다.

이 의원의 정치이력을 살펴보니 일단 선출직 당선부터 기점을 잡더라도 충북도의회 의원에 당선된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에는 신민당 소속으로 9대 국회의원이 됐다. 10대 때도 신민당 의원이었지만 12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당시 야권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평민당으로 당적이 바뀌었다. 그래도 유권자들은 이 의원을 철새 정치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의원을 평생 따라다닌 것은 ‘영원한 DJ맨, 골수 야당 정치인’이라는 닉네임이었다.

이 때까지 3선 의원이었던 이 의원이 한 차례 ‘선수(選數)를 더해 4선의 국회부의장으로 거듭나기까지는 무려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 당적도 평민당에서 다시 신민당, 민주당, 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으로 바뀌고 또 바뀌었다.

외람된 얘기지만 90년대 중반부터 고문이라는 직책으로 정치적 생명을 이어오던 이 의원이 일흔네 살에 다시 금배지를 달고 국회 부의장에 오른 것은 고목(古木)에 꽃이 핀 격이었다. 더불어 지지자들로부터는 거목(巨木)으로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정치인을 평가하는데 있어 나이가 많고 적음을 잣대로 들이대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초기 신라시대에 왕을 부르던 호칭 가운데 하나인 ‘이사금’은 연장자를 의미했다고도 하지 않는가. ‘떡을 물게 해 찍힌 이빨자국의 수를 세 연장자를 지도자로 삼았다’는 역사서의 내용은 재미도 있고 어느 정도 일리도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 의원이 사실상 ‘유턴’에 해당하는 정치적 변신을 했다는 것이다. 자유선진당에 입당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사실 극우, 진짜 보수다. 그동안 진보 세력으로 몰린 것이 서운하다”고 말한 것은 사실 귀를 의심케 한다. 빼고 더할 것도 없이 반세기에 이르는 정치인생의 총화가 ‘나는 사실 극우였다’는 커밍아웃이라는 것이 놀랍다는 얘기다.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선거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결론내리기 어렵지만 어찌됐든 유권자들의 선택은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주고 단죄하기도 한다. 남부 3군의 유권자들은 노정객의 폭탄급 커밍아웃에 어떤 판단을 내릴까? 4월9일, 거목이었던 원로정치인은 고목이 될 수도 있고 거목으로 남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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