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습니다. 악취가 온 나라에 가득합니다. 어느 한곳 썩지 않은 곳 없이 모두 썩어있기에 나는 시궁창냄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감사원이 또 칼을 빼 들었습니다. 부정부패가 위험수위를 넘자 공직사회에 대한 대대적인 직무감찰에 나선 것입니다. 이제 또 여기 저기서 곡소리가 나겠지만 ‘반짝감찰’이 약효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1971년 4월25일, 서울 장충동 공원에는 1백만 군중이 운집했습니다. 이틀 뒤 치러질 제7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세 번째 대통령에 출마한 공화당 박정희후보의 마지막유세가 열린 것입니다. 몇 일전 신민당 김대중후보의 유세에 1백만 시민이 운집하자 당황한 공화당이 전국에서 대규모로 당원을 동원해 기 싸움에 맞섰던 것입니다.

유세장의 분위기가 고조되자 박정희후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비장하게 선언합니다. “이번 한번만 본인을 지지해주신다면 이 땅에서 영원히 부정부패를 추방하고야 말겠습니다.” 그는 격정을 못 이기는 듯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제스처마저 보입니다.

당시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정부패의 척결은 입후보자의 대 국민공약으로는 첫 손가락에 꼽히는 메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10년 전 5·16쿠데타 때 자신이 혁명공약으로 내세운 ‘부정부패의 척결’이 실패했음을 자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8년 뒤 그가 시해 될 때까지 척결되지 않았습니다.

정부수립 이후 부정부패 추방은 줄곧 우리 사회의 시대적 화두가 돼왔습니다. 박정희만이 아니라 역대 대통령 누구도 부정부패의 척결을 다짐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승만도 그랬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도 한결같이 부정부패추방을 공언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실현하지는 못했습니다.

생각으로야 그렇게 하고싶었는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 본인이 썩고, 아들이 썩고, 심복이 썩고, 혁명동지들이 썩고, 당 동지들이 썩었는데 부정부패가 추방될 리가 없습니다.

그때가 아니라도 지금 역시 이 나라는 ‘도둑의 나라’가 되어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범죄공화국’이라는 낙인이 찍힌 지는 오래입니다. 누구나 저녁에 종합뉴스를 볼 것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브라운관을 뒤덮는 각종 범죄사건들…. 장관,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기업인, 사회지도층, 교수, 의사, 변호사, 심지어 군인까지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집단이 없을 만큼 총체적으로 부패해 있는 게 우리사회의 실상입니다.

부정을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마저 썩어있는 상황이고 보면 더 할 말을 잃게됩니다. 그래 노니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이 무서운 줄 모르고 납치와 유괴, 강도와 살인을 일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답답한 것은 국민들의 도덕불감증입니다. 부정을 응징하고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면 범죄는 이처럼 만연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못 먹는 놈이 병신’이라는 냉소마저 넘치는 상황이고 보면 도덕을 운운하는 일조차 쑥스럽습니다.

지난 날 선조 들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삶의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가난했지만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바르게 살고자했습니다. 그러기에 모두의 삶이 떳떳했고 사회 또한 깨끗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떻습니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명심보감의 글귀가 떠오릅니다. ‘나물밥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삶의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네. 불의로서 얻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我於如浮雲).’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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