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편집국장

지난 8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발생한 한국인 자살 사건 기사를 접하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충주 K대 시간강사 한경선씨(44 여)는 자신이 박사학위 공부를 했던 미국 땅에서 비정규직 교원의 한을 토하며 생을 마감했다. 자살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자기 표현 행위’라고 했던가. 한씨는 3장의 유서를 통해 한국 대학에서 벌어지는 강의전담교수(시간 강사) 잔혹사를 고발했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고 발버둥치며 4년(한국 생활)을 보낸 뒤 이곳 오스틴에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았다.…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라며 충주 K대에서 견뎌낸 2년간의 시간을’ 20년처럼 느껴졌다’고 술회했다.

한씨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텍사스주립대에서 테솔(TESOL·외국인의 영어강의) 분야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4년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 자리를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3군데 대학의 전임강사 공채에 실패하고 2006년부터 충주 K대학의 비정규직 강의전담 교수로 일하게 됐다. 첫해 책임수업은 주당 12시간이었으나 이듬해 재계약 때는 ‘주당 24시간으로 일방적으로 변경했다’고 유서를 통해 밝혔다. 또 외부대학에 출강했다는 이유로 동료 강사가 재임용에 탈락하자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고 적었다.

한씨는 재임용 탈락한 동료 강의전담교수가 복직소송을 제기하자 선뜻 법정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한씨가 처한 현실은 주변의 불행을 챙길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 씨의 집은 서울 만리동의 다세대주택 옥탑방. 거기서 눈 수술을 받은 아버지와 중풍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고등학생인 딸까지 키우며 힘겹게 생활했다. 시간강사의 박봉에 4식구의 삶을 담는다는 것은 생계이전의 생존문제였을 것이다.

결국 한씨는 지난 2월말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꿈을 키웠던 오스틴시의 한 모텔에서 그 꿈을 접었다. 한씨는 유서에서 “‥이런 문제는 그럴 듯한 구호로는 해결될 수 없다. 부조리와 모순은 연구와 강의를 열심히 하겠다는 순수한 열정과 희망을 접게 만들었다”며 끝을 맺었다. 어머니의 주검을 지켜본 고교생 딸은 곧바로 귀국했고 병든 부모는 형편이 어려워 교민들이 마련한 추도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할 수없이 한인회측에 유골만 수습해 국내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시간강사 2년이 20년처럼 고통스러웠던 이 땅에 고인의 유골을 다시 묻게 된 것이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서울대에서만 3명의 시간강사가 자살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지성의 상징인 서울대는 전임교원 1751명에 계약직 강사가 1330명에 이른다. 각 대학에서 시간강사의 수업비율이 30~50%에 달하지만 이들의 인건비는 교직원 전체로 볼때 3~10%에 불과하다. 국민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학교가 부지기수다.

비정규교수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국회앞에서 ‘교원지위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각 당에서는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총선에 밀려 자동폐기될 판이다. 일부에서는 법이 있더라도 대학측의 ‘버티기는 못 당한다’는 자조섞인 한탄을 쏟아낸다. 지난해 11월 청주지법은 주성대 교수 2명에 대한 면직취소 판결을 내렸다. 대학에서 학과 폐과를 내세워 교수들에게 강의전담교수 희망서를 쓰도록 강요한뒤 거부한 2명을 면직처분시킨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난 2월 18일 대학측은 해당 교수 2명에게 복직통보서를 보냈다. 하지만 불과 10일만에 학과 폐과를 이유로 또다시 면직처분시켰다. 판결에 따라 미지급 월급을 주더라도 학교안에 발을 못붙이게 하겠다는 심산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번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한다. 우린 이미 통계로 춤을 추는 물신주의, 물량주의 한 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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