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압축 결과 발표하자 곳곳에서 불만 폭발

전국적으로 5대 1에 육박하는 예비후보가 몰린 한나라당의 공천문(-門)은 지독히도 ‘좁은문’이다. 2월19일 실시된 면접과 1차 압축 결과 충북에서도 42명의 한나라당 예비후보 가운데 23명이 대략 3배수 안에 들었고 19명은 끝내 벽을 넘지 못했다.

문제는 최종 관문이 8명의 진입만을 허용할 뿐 15명은 또 다시 문전에서 헛물을 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부분 지역구에서 공천자가 결정됐다. 따라서 1차 압축을 통과한 인사 가운데 상당수는 오히려 특정인에게 공천을 몰아주기에 적당한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3월 초 한나라당의 공천이 확정된 이후 최종 탈락자들의 거센 반발은 뻔한 상황이다. 그러나 1차 탈락자 가운데 일부도 압축 결과에 반발해 탈당 및 출마를 검토하고 있고, 아직 잠잠히 있지만 반란의 결행 시기를 ‘공천 확정 이후’로 속셈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중에는 ‘다른 건 몰라도 특정후보가 공천장을 받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저주형’도 있다. 이들의 반발 수위는 자신이 직접 저격수가 되든지 안 되면 특정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다른 당 후보라도 돕겠다는 식이다.

지난 대선을 과반수 득표로 승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쾌청하던 한나라당의 머리 위에 내전(內戰)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억울하지만 참으리
잘못 튀면 다음 기회도 없다?

▲ 청주 흥덕을 공천 1차 압축에서 탈락한 김진호 전 충북도의회 의장은 5.31 지방선거 청주시장 경선에서도 내부 투표에서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밀려 고배를 마셨다. 분할만도 하지만 “시간을 두고 반성하겠다”는 것이 김 전 의장의 결심이다.
1차 압축에 탈락한 인사 가운데 상당수는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일단은 참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홧김에 허투루 행동했다가는 앞으로 올 수 있는 기회조차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각종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지난 대선에서도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식으로 한나라당 앞에 줄서기가 이뤄졌지만 이번 18대 총선 공천심사 결과 탈당 경력자나 입당파들은 박대를 당해야만 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상황에서 가장 들이대기 쉬운 잣대가 ‘순혈주의’라는 것은 사실 상식 수준이다.

김진호 전 도의회 의장도 억울하지만 일단은 참고 지켜보겠다는 경우다. 김 전 의장은 지난 17대 총선 직전까지 한나라당 상당지구당 위원장을 맡았으나 막바지 공천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윤의권 후보에게 밀려 분루를 삼켜야 했다. 또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에는 청주시장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내부 투표에서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밀려 남상우 현 시장에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이번 공천 탈락까지 합치면 삼세번 모두 밀려난 셈이다.

김 전 의장은 그러나 “오라는 데도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도 있고 내가 부족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며 “어차피 고향이 여기고 여기에서 일할 생각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반성하면서 향후 진로를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구 민주당 입당파 가운데 청원지역 공천에서 탈락한 홍익표 대청항공 대표이사도 비슷한 입장이다. 홍 대표이사는 “말이 면접이지 정해놓고 벌인 판이었다. 말을 아껴서 그렇지 공천심사랄 것도 없고, 입당자는 설 공간이 없었다”고 혹평하면서 “극단적 이명박 패와 박근혜 패가 나눠먹기를 한 것이 전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대표이사는 그러나 “출마나 탈당까지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청주 흥덕갑 공천에서 탈락한 이현희 전 국민카드 부사장은 탈락 직후 경쟁 관계에 있던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경우. 이 전 부사장은 “정치신인으로서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면서 “청주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김병일 후보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미련없이 탈당 출마
선진당 아니면 무소속이 갈 길

▲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 후보(청원)로 출마한 이래 무소속과 구 민주당을 오가면서도 끈질기게 Mr DJ로 살아왔던 김기영 전 민주당 도당위원장은 한나라당으로 당을 옮겨 신청한 공천에서 탈락하자 다시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공천결과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탈당과 당적 변경, 혹은 무소속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후보들도 있다. 가장 빨리 입장을 밝힌 인사는 진천·음성·괴산·증평 선거구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송석우 전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이사. 송 전 대표이사는 탈락 이틀만에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이사는 그러나 특정 정당(자유선진당)에 입당할지 무소속으로 출마할지는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후보가 몰려 4배수 압축이 이뤄진 이 지역구에서 추가 탈락자들끼리 자유선진당 공천을 겨뤄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청원에 공천을 신청했던 김기영 전 민주당 도당위원장도 25일 현재 탈당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다. 김 전 위원장은 “이미 마음은 굳혔지만 남의 잔칫날(취임식)에 재를 뿌리기 싫어 탈당 시점을 미뤘다”며 “다른 당으로라도 출마하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위해 뛴 만큼 깨끗하게 무소속으로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특히 공천 면접과정이 철저하게 각본대로 이뤄졌음을 낱낱이 폭로하기도 했다. ‘왜 이리 당적변경이 잦냐’는 것으로 첫 질문이 시작돼 시종일관 부정적인 질문만 이어졌다는 것.

김 전 위원장은 “당명만 바뀌었을 뿐이지 구 민주당을 배신하지 않았고, 지난해 8월부터 한나라당에 입당을 신청하고 당을 위해 뛰었는데, 해당 행위자들의 복당은 다 받아주면서도 나에 대해서는 대선 하루 뒤인 12월20일에야 입당이 허용됐다”며 “한나라당은 국민화합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세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위원장은 또 “심지어 나에게는 ‘이렇게 빚이 많은데 무슨 돈으로 정치를 하겠냐’고 비아냥거린 반면 다른 후보들은 ‘변재일 의원을 이길 수 있냐’는 봐주기 질문으로 시작하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로서는 섣불리 탈당, 출마를 선언하는 후보들이 많지 않지만 최종 공천자가 확정되면 최종 공천 탈락자와 1차 탈락자들의 탈당 및 출마가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따라서 아직은 진용을 갖추지 못한 자유선진당이 이삭줍기에 성공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고보자’저격수도…
“특정인 무조건 낙선시키겠다”

▲ 청주 흥덕을 공천에서 1차 탈락한 박환규 전 충북도 기획관리실장은 자신의 공천 탈락이 특정인이 사주한 음모에 따른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박 전 실장은 공천이 확정되면 자신이 출마하든 타 후보를 돕든 특정인 낙선운동에 나설 태세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가장 절치부심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청주 흥덕을 공천에서 탈락한 박환규 전 충북도 기획관리실장을 들 수 있다. 박 전 실장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사실상 영입케이스로 공직을 떠나 당에 발을 들여놓은 경우다. 박 전 실장은 청주시장 경선에 출마했으나 후발주자로 뛰어든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그래도 움츠러들지 않았던 것은 18대 총선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박 전 실장은 지난 2007년 1월 친 MB계열인 ‘선진미래 충북포럼’ 결성에 참여해 운영위원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당내 경선, 대선 본선 과정에서도 충북도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활약하는 등 그날을 준비해왔다.

박 전 실장의 분노는 3배수 안에도 들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1차 탈락은 특정인의 공천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음모라는 것이다. 공천 최종 판단에 여론조사 결과가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만큼 특정인에게 공천을 주기 위해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자신을 먼저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박 전 실장은 “2006년 나를 당에 영입하는데 발 벗고 나선 데다 ‘이왕 총선까지 바라보고 정치를 하려면 지금 공직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부추긴 인물이 결국 총선 경쟁에 같이 뛰어들었다”며 “만약 그 특정인이 공천을 받는다면 당이 나를 배신한 만큼 지역 사회의 자존심을 걸고라도 (특정인을) 떨어뜨리고야 말겠다”고 주장했다.

박 전 실장은 “지금 당장 당을 뛰쳐나가라는 충고도 있지만 공천결과는 지켜보겠다”며 “내가 출마할 수도 있고 설사 출마는 안 하더라도 정의는 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저격수를 자처하는 경우는 현재로서는 박 전 실장이 유일하다. 그러나 최종 공천 결과에 따라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후보 간에 서로 정치 도의를 언급하며 날을 세우는 사례가 더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 Q씨는 “대선 승리와 정당 지지도만 믿고 자만하고 있다가는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뇌관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면 참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떨어지니 딴청도…
“면접도 안 보려다가 봤다”

▲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탈당을 한 뒤 대선 준비과정에서 한나라당으로 돌아온 권영관 전 충북도의회 의장은 윤진식 전 장관의 출마를 돕기 위해 애초부터 충주지역 출마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포도’ 이야기처럼 막상 공천에서 떨어지고 나니 ‘원래부터 생각이 없었다’고 딴청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현역인 이시종 의원이 굳게 버티고 있어 한나라당 공천신청자 가운데는 마땅한 경쟁자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충주의 권영관 전 도의회 의장이 이에 해당된다.

권 전 도의장은 도의원을 연임하고 도의회 의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경력 상으로는 나름 정치적 거물(?)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전 의장이 3배수 공천에도 들지 못한 것은 명분 없는 탈당과 타 당 후보로 시장 출마, 복당 등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권 전 의장은 2006년 3월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탈당하는 과정에서 김호복, 이승일씨 등을 겨냥해 “과거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사람들이 다시 한나라당에 들어오고 한나라당 시장을 맹비난했던 지역인사도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있다”고 애당심을 운운하며 탈당했으나 두 달 뒤에는 자신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주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권 전 의장의 한나라당 회귀는 낙선 이후부터 차근차근 진행됐다.

2006년 8월 친 MB 성향의 한국지방자치발전연구회를 만들었고, 부인인 박금자씨가 한나라당 후보경선 당시 이명박 선거캠프의 충주 책임자를 맡았기 때문이다. 권 전 의장도 직접 속리산경제포럼 공동대표, 한반도대운하 범충북도민추진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스스로 당으로 돌아오는 징검다리를 놓은 끝에 대선 직전인 지난해 11월 전격 복당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에 공천에 탈락한 권 전 의장은 “나는 원래부터 윤진식 전 장관이 충주로 내려오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면접도 안 보려고 했다. 윤 전 장관이 초등학교, 중학교 후배지만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에 당연히 돕기로 했다”며 “내가 삼원초와 충주중 동문회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더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권 전 의장은 “윤 전 장관이 대통령 취임식도 끝난 만큼 곧 충주에 내려올 것”이라고 윤 전 장관의 거취에 대해서도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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