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대통령은 1987년의 6월 항쟁이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존재근거라고 이야기했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주요 지도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 일을 통해 정치에 입문하고, 민주화의 완성을 향한 국민의 여망을 모아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으로서 6월 항쟁을 되새기고 각오를 다지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를 계기로 대통령의 심기일전한 모습을 보고 싶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매우 엄중하고 불안정하며, 경기침체와 부동산값 폭등에 따라 서민경제의 주름도 더 늘어만 가고 있다. 여기에다가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네이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새만금방조제 공사를 계속해야 할지의 문제 등을 해결하는 일도 대통령의 철학적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보다 자주적인 자세를 견지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세력과 친미에서 벗어난 외교행위를 불온시하는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있으며,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바라는 세력과 그러한 경기부양책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서로 다투고 있고, 전자정부라는 정부의 구호에 호응하여, 네이스를 옹호하는 세력과 정보인권을 이유로 네이스 시행에 반대하는 세력이 부딪히고 있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의 삼보일배운동으로 새만금방조에 대한 친환경세력의 저항이 고양되는 가운데, 전북의 개발세력들은 도지사부터 삭발하고 방조제의 완공을 밀어붙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라는 말로써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갈등의 조정이 꼭 기계적 중립성과 산술적 중간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나름의 철학과 시국관을 바탕으로 큰 틀을 잡고, 그 틀 속에서 전술적 방법을 선택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기를 지지자들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이 바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노대통령의 행보에서 약간의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선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 노대통령을 비롯한 외교안보 팀은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당당한 외교를 주장한 노대통령의 과도한 언사가 문제가 아니라, 미사일방어체제 구축과 미일 안보동맹의 강화, 그리고 그 하위 파트너로서 한국의 위치설정 등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읽고, 대미, 대일 외교를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네이스의 경우도 도대체 그 방대한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왜 국가에서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의문은 제쳐놓고, 전교조와 교총의 세력싸움으로만 사태를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고, 새만금도 일단 벌여놓은 일을 중단할 수 없다는 안이한 생각에서 간척을 강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환경의 가치와 지속가능개발이 보편적 개발 철학이 되고 개펄의 경제적 가치와 생태적 가치가 개펄을 메웠을 때보다 훨씬 크다는 의견은 왜 애써 무시하는가? 왜 국세청장이 하겠다고 한 룸싸롱 접대비 불인정을 뒤집는 결정을 내리는가? 철학의 부재가 의심스런 이런 일들과 함께 최근 경제적 보수세력의 공세가 만만찮음을 시민사회는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라는 명목 하에 모 경제지를 필두로 하여, 기업가 단체들이 현정부를 친노동 정권으로 몰아 붙이고,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더 이상 친노동자적 정책을 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현정부의 노동정책은 과거에 잘못된 노사관계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고쳐가고 있는 중이다. 연대보증제로 노동자를 옭아매고,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쟁의를 하면 곧바로 법원에 손해배상청구를 하여, 노동자를 사실상 노예로 만든 저간의 노사관행이 현정부 들어와서 수정되는 것이 그렇게 기업가들에게 위협적인가? 현정부의 정책 중 그나마 평가해 줄 수 있는 것이 노사관계의 안정화일 것이다. 파업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그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억제할 수 있었던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의 심기일전으로 이제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한 걸음 더 앞당겨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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