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7)] -영동노근리

마 전에 세계의 시선을 한 눈에 집중시켰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종전을 알렸다.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침공 명분으로 삼았지만, 배후에 또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은 전쟁이 가져온 아무런 힘없는 민간인들의 죽음이었다. 특히 노인들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의 참혹한 죽음은 무엇보다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에게도 아직 잊혀지지 않는 아픈 전쟁의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우리 나라 곳곳에서는 우리가 원치 않았던 무차별 양민학살의 현장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 7월 26일에서 29일까지 사흘간 충북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앞 철길과 다리 아래에서 영동 주곡리, 임계리와 타지에서 남하 중이던 피난민 학살 사건은 그 동안 주검들과 함께 조용히 묻혀있었다. 그러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3년 전 영국의  BBC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물론 훨씬 전부터 당시 피해자 정은용씨가  진상규명을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아무도 귀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외롭고 힘든 싸움에 희망을 준 것은. 군사 기밀 문서의 해제시기와 맞추어  BBC 방송국에서 제작한 ‘노근리 보고서’라는 다큐멘터리였다. 
 그것은 제 3의 국가에서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한국전쟁 특집으로 방영되어 전쟁의 아픔을 잊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척 큰 충격을 주었다.

 “kill’em all(무조건 사살하라)”을 외치던 장교의 명령에 따라 미군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피난길을 나서는 민간인을 향해 3일 밤낮 계속 총격을 가했다. 물론 인민군이 피난민으로 위장하여 침투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행해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당시 그곳에서 희생된 300명중의 83%가 노약자나 부녀자, 아이들이었다는 점에서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인민군을 잡기 위한  대가가 너무 컸던 것은 아닐까? 

피난길에 부모를 따라 나섰다가 쌍굴다리에 이르러 갑자기 시작된 총격으로 바로 옆에서 엄마의 죽음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할머니, 또 폭격으로 눈알이 빠져 스스로 눈알을 빼야 했다는 또다른 할머니는 평생을 당시의 상처로 불행하게 살았다며 큰 한숨을 쉬시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피해자의 증언을 보며 국가를 위한 전쟁에 평생 무거운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개인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뒤로는 당시 가해자였던 미국 병사들의 증언도 이어진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노근리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상관의 명령으로 가해자가 되었던, 지금은 노인이 되어버린 병사들도 제대 후 불면증과 악몽 그리고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며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당시 가해자도 피해자도 원치 않았던 싸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지금도 2분 30초 간격으로 기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는 노근리 쌍굴다리 밑에는 53년 전 당시의 총성이 들리는 듯하다. 굴 양옆으로 우리 양민들을 향해 쏘았던 총탄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검게 변해버린 총알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당시 수로였던 쌍굴다리 밑에는 무차별 가해지던 미국병사들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숨죽이며 3일 밤낮을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금도 잔잔히 흐르는 물을 보면, 무심히 자라고 있는 풀들을 보면 그저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을 텐데......

피해자들은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명백히 드러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도 제대로 된 피해배상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건 간에 그로 인해 상처를 입고 평생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한 개인의 인권을 위해 보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

다행히  피해구명을 위해 애쓰고 있는 노근리 피해자 대책위원들을 영동군에서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다.  그 방법으로 사실증명을 위해 이제는 노인이 되신 피해자들의 증언을 녹취하고 현장을 보존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건립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너무 늦게 시작된 일이지만 노근리 다리의 악몽이 세상에 알려져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한 원혼을 달래주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아픈 역사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6월이면 호국보훈을 주제로 한 글쓰기, 웅변, 포스터 그리기가  연례행사로 치러진다. 하지만 전쟁을 컴퓨터 게임으로만 알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숙제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생생이 남아있는 노근리 쌍굴다리 현장체험학습과 아직 살아 계시는 당시 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 직접 증언을 듣는 것도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체험이 된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서울 시청건물과 함께 문화재 등록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다. 그런데 기념물 설치다, 위령탑 건립이다 해서 자칫 지금의 모습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아무쪼록 전쟁을 모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현장학습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리아이들의 밝은 미래에는 싸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꿈꿔본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