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된 도종환 시인, 포털사이트에 365일 연재

도종환 시인은 최근 발표한 시에서 ‘세시와 다섯 시 사이를 걷고 있다’고 표현한다. 인생의 시간을 하루로 견주어 볼 때 그의 나이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두렵지만 희망이 살아있는 시간’인 바로 세시와 다섯 시 사이라는 것.

도종환 시인은 지난 2년 동안 청주민예총 지회장으로 역임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는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새 발걸음을 내딛는다. 뿐만 아니라 올해에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과 연계해 포털사이트에 ‘매일 글쓰기’를 실천할 계획이다. 2006년 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한 ‘도종환의 시 배달’사업으로 배달부 경험을 쌓은 그는 이제 더 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문학엽서’를 전달하게 됐다. 이러한 도전을 앞두고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는 그를 2007년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만났다.

먼저 도 시인에게 세시와 다섯 시 이야기부터 꺼냈다. “사르트르는 3시를 무엇을 하기엔 너무 이르면서도 늦은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내년엔 사무총장일 외에도 문학의 도전을 감행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시간을 최대한 아끼고 잘 써야 할 것 같아요.”

도 시인은 청주민예총 회장을 맡으면서 지역문화를 더욱 가까이 접했다. 따라서 그의 행보를 궁금해 하는 지역 예술가들이 많다. “지역에서 구체적인 업무를 맡기는 힘들겠지만, 중앙과 연계한 사업들을 펼치고 싶어요. 가령 올해 전국문학인대회를 청주에 유치하려고 합니다. 지역문화는 이젠 후배들에게 맡겨야죠.”

또한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민족작가회의에서 명칭을 바꾼 후 첫 출범인지라 기대와 우려가 함께 있는 자리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한국문학의 중추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은, 신경림, 황석영, 박완서, 조정래, 백낙청 등 문단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안도현, 김용택 등 젊은 시인들까지 한마디로 한국 현대문학사를 써내려온 작가들입니다. 그런데 명칭 때문에 일부 재야 운동권 문인들로 치부돼 왔어요. 이름은 바꾸더라도 잘못된 체제에 저항했던 문학정신은 이어가야죠.”

한국작가회의는 기존 이사장 체제에서 사무총장 중심으로 조직을 다시 꾸린다. 사무총장은 업무와 조직, 인사 등을 맡게 돼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그는 임기동안 해야 할 사업으론 △남북한 문학교류 △아시아-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교류연대 △문학인 사회적 영향력 회복 등을 꼽았다. 특히 남북한이 함께 빠르면 1월 내로 ‘통일문학’ 창간호를 펴낸다.

통일문학은 지난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사실 이전 북한에서의 통일문학은 체제 홍보 계간지로 약 70여권이 발간됐다. 북한은 이번 계기로 지금까지 냈던 통일문학을 포기하고, 남북한 문인들의 글로 구성된 그야말로 ‘통일문학’을 내는 데 합의한 것이다. “교통과 통신이 원활한 상태가 아니라 원고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FAX’를 통해서였죠. 이마저도 어려워 원고를 직접 들고 가서 개성, 심양, 금강산에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 소통을 이뤄낸 통일문학에는 남북한 문인 동수로 시, 소설, 평론, 산문 등이 실린다. 양측에 편집위원을 두고, 교차 인정되는 글들만 수록하기로 합의했다.

마지막으로 도 시인은 지역문화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지역문화는 이제 새로운 프레임을 구성해야 할 때입니다. 현행대로 문예진흥기금이나 해마다 여는 행사들로는 지역문화발전을 이끌어낼 수 없어요. 명맥만 유지할 뿐이죠. 이건 예총도 민예총도 마찬가지예요. 큰 틀에서 지역문화를 고민하는 기구나 포럼 등 새로운 연구단위가 필요합니다. 전주와 경기도의 도시들이 이미 문화관련 예산이나 행사, 정책에서 앞서가고 있습니다. 경제특별도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 나와야죠. 충북도도 이제 시대에 걸맞는 ‘문화특별도’가 돼야만 합니다.”

도 시인은 “지난 한해는 소소한 일들이 많았지만 문학적 내실은 다지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올해는 문학인들의 사회적 영향력 회복을 위해 먼저 발로 뛰겠다는 것. 바로 1월 초에는 구구산방에서 쓴 글들을 엮은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좋은 생각 펴냄)가 나온다. 2008년에는 시인의 글을 매일 만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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