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원 공유재산계획 변경, 원칙 무시 통과
예산 먼저 승인 해주고 계획안은 ‘번안동의’로

청주시와 청주시의회의 밀월관계가 갈수록 가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밀월관계가 아니고 청주시가 의회 위에 군림하는 양상이다.
청주시가 의회에 제출한 2008년도 제1차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 가운데 ‘용정동 축구공원 건립계획’을 9일 해당 상임위원회인 재정경제위원회가 부결 처리했으나 다음날 긴급히 이를 번안동의로 의결하는 촌극을 빚었기 때문이다.

번안동의(飜案動議)란 의안 심의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고 심의결과를 수정하는 절차로, 재경위가 당초 부결 처리한 것에 대해 잘못 심의했음을 인정한 꼴이다. 심의가 끝난 뒤 결과를 번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사과정에서 제출된 안건의 일부 내용을 고쳐서 의결하는 수정동의와는 성격이 분명히 다른 것이다.

▲ 청주시가 축구공원 건립과 관련해 예산을 먼저 승인받은 뒤 공유재산관리계획을 변경하는 등 절차를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주시의회가 1차 부결 후 번안동의를 통해 이를 통과시켜 빈축을 사고 있다. 청주시의 공몰기는 지나치게 저돌적이다.
문제는 번안동의가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집행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 재경위는 당초 9일 심사 과정에서 “90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용정동 축구공원 건립계획을 심의했으나 조성되는 축구장 3면에 비해 관람석 540석과 주차장 85면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부결 처리했으며, 이 같은 내용을 즉각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재경위는 또 “간이화장실 확충도 적극 검토해 청주시의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게 완벽한 경기장이 건립되도록 노력해 달라”는 주문사항도 덧붙였다. 이대로라면 청주시가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다음 의회에서 다시 처리하는 것이 수순이다.

재경위 소속 A의원은 “국비를 일부 확보해서 건립하는 축구공원은 전국 단위 대회는 물론 세계대회도 치를 수 있어야 하는데 관중석도 500여석에 불과하고 화장실도 간이화장실로 설치할 경우 청주를 대표하기는커녕 망신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의원들이 부결했던 것”이라고 부결 처리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시, 부결되자 압박·읍소로 결과 뒤집어
그러나 의안 심사가 끝난 뒤 재경위 의원들은 남상우 시장을 비롯한 청주시의 고위 공무원들로부터 집중공세를 당해야 했다. 재경위 소속 일부 의원들이 밝힌 집행부의 공세 가운데 골자는 ‘2005년부터 추진해온 사업이 지연되면서 국비를 반납해야 할 수도 있다’는 압박에서부터 ‘의안이 부결될 경우 감사원 감사가 내려올 수 있고, 관련 공무원이 징계를 당할 수도 있다’는 읍소까지 전방위적인 것이었다.

재경위 소속 B의원은 “공무원 징계를 운운하는 등 사정을 해서 10일 본회의를 마친 뒤 논란 끝에 다시 상임위를 열었고 저녁 6시30분까지 격론을 벌인 끝에 번안동의를 결정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번안동의는 사실상 상임위가 실수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의원이 서면으로 번안동의안을 제출하는가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B의원은 이에 대해 “어차피 의원들이 합의해 번안동의를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누가 서면으로 동의안을 내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공은 최고연장자에게 굴러가 P의원이 총대를 메는 상황이 벌어졌다.

번안동의의 내용은 540석으로 돼있는 관중석을 1200석으로 늘리고, 주차장은 일단 85면에서 100면으로 확충한 뒤 추후 115면을 더 확보하는 것이다. 또 간의화장실 대신 일반화장실을 짓고, 관리동도 건립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같은 내용은 형식적으로 번안동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9일 의안이 부결된 뒤 청주시가 긴급히 내용을 수정해 의회에 제출한 것이다. 10일 상임위를 통과한 번안동의안은 11일 267회 청주시의회 3차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의회의 자존심은 부시장 사과?
과정은 집행부의 간청을 받아준 것이지만 결과는 의회의 자존심을 구긴 이번 사태에 대해 의원들은 시장 또는 부시장의 본회의장 사과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결국 곽연창 부시장이 11일 본회의에 출석해 “의안처리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 부족했고, 부실한 자료를 제출하는 등 준비가 소홀해 의안심사에 어려움을 끼쳤다”며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하지만 속으로 웃은 승자는 청주시였고 일부 의원들은 오히려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C의원은 “본회의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반대토론에 대비해 시장이나 부시장의 사과를 요구했는데, 결국 부시장이 나왔다. 사실 이 문제는 의안이 부실했던 것도 문제지만 공유재산 관리계획도 변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말 의회가 예산을 먼저 심의해 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B의원도 “재경위에서는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에 대해서만 다루게 돼있지만 문제는 소관 상임위인 기획행정위원회가 지난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축구공원 관련 예산을 먼저 승인해준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재경위 의원들은 이처럼 절차가 뒤바뀐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고 당초 부결 처리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만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해 부결 처리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시의회는 왜 지난해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도 이뤄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예산을 승인했을까? 이에 대한 A의원의 견해는 “의원들이 뭘 몰라서가 아니겠냐”고 자조 섞인 견해를 피력했다. 어물쩍 넘어가려는 청주시의 의도를 어수룩한 의원들이 간파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절차 뒤바뀐 불도저 행정 또 다시
청주시가 공유재산관리계획도 변경하지 않고 예산부터 승인을 받는 등 절차를 무시한 불도저식 행정을 밀어붙인 배경은 사실상 의회를 얕잡아 본 것으로 분석할 수밖에 없다. ‘국비를 반납하지 않기 위해’라는 간곡한 명분으로 의원들을 설득했지만 정작 담당 공무원은 ‘국비 반납설’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담당공무원은 “사업이 지연됨에 따라 압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비는 2008년 말까지 여유가 있다. 2005년 10월 청주시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축구공원 건립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로 해당 부지에서 암반이 발견돼 예상 공사비가 증액되고, 지역주민의 반발로 착공이 늦어지는 등 2년여 동안 착공이 지연되다가 지난해 10월 문제가 된 마을을 공사예상지에서 제척하기로 결정하면서 급물살을 타다보니 서두르려 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절차를 다소 무시하더라도 일단 밀어붙이고 보자는 식의 행정관행이 답습된 것이다.

또 다른 청주시 공무원은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따르면 토지의 취득 등과 관련해 공유재산관리계획 승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30% 이상 설계변경이 이뤄지면 재심사를 받도록 돼있다. 축구공원 건립 계획도 시유지를 제외한 대상 부지가 일부 바뀌면서 재심사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심사 이전에 예산부터 통과시킨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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