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복 노무사

필자는 8년간의 개업 노무사 생활을 정리하고 1월부터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에서 설립한 호죽노동인권센터에 몸담고 있다.

호죽노동인권센터는 비정규노동자, 외국인이주노동자, 최저임금을 받는 빈곤층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무료로 법률구조활동을 지원하고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인권이 보호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활동을 펴나갈 것이다. ‘호죽’은 평생을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사시다가 얼마 전 작고하신 고 정진동 목사님의 호이다.

아주 적지는 않은 나이에 인생의 중요한 변화를 시작하는 필자는 새삼스럽게 ‘관계’의 소중함에 대하여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노동인권의 문제에 대하여 썩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못하였던 필자는 사업주의 법률자문을 주로 담당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개업 노무사로 나아갈 기회가 많았다.

그러한 나를 노동자와 함께 하도록 붙잡아두고 이곳 호죽노동인권센터로 새로운 인연을 맺게 해 준 것이 바로 ‘관계’의 힘이다. 8년간의 개업 노무사 생활을 하면서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을 확고하게 만든 이들이 나와 관계를 맺었던 많은 노동자들이다.

그 노동자들은 보통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혹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회사에 밉보여 해고된 이들이었고, 작업장에서 과로에 시달려 쓰러지거나 다친 이들이었고, 몇 달 간 임금을 못 받아 생계가 막연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었다. 비정규노동자들, 외국인이주노동자들처럼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오로지 사회적으로 궁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도 쉽게 사업장 밖으로 내몰리거나 임금을 떼어먹힌 이들도 제법 있었다.

어떤 이주노동자는 회사가 임금을 주지 않고, 출국시한이 내일 앞으로 닥쳐오자 현실에 절망하여 자살한 이도 있었다. 몸 밖에 가진 것이 없는 그들에게 해고와 노동재해와 임금체불은 경우에 따라서는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큰 고통일 것인데 내가 돈을 벌려고 마음먹었던 한 동안은 그것이 영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스쳐지나가는 ‘의뢰인’이고‘고객’이었고 그들이 맡긴 일들은 내가 다루는 많은 ‘사건’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이들의 고통 혹은 그로 인해 앞으로 바뀔 수도 있는‘운명’이 당시의 나에게는 결코 보일리가 없었다.

그런데 한동안 나에게 ‘의뢰인’이자 ‘고객’ 취급을 받았던 많은 노동자들과 관계가 쌓이고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통받고 절박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다른 동료들의 처지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대부분 순박하고 작은 도움에도 크게 감동하였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보편적으로 매우 강한 동료와의 유대관계와 서로를 돕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있었다.

헌신적인 동료애, 순박한 심성, 공동체 의식들이 사실은 땀흘려 일하는, 믿을 것은 오로지 몸 밖에 없는 이들의 보편적인 심성인 것을 알고 매우 놀라웠다. 사람의 심성을 건강하게 이끄는 것은 한 동안 내가 바라보았던 돈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것을 알았고, 노동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깊은 근원과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동인권이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노동’의 소중한 가치가 존중받고 우리 사회가 공동체를 지향하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임을 나는 노동자들로부터 배워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개인인 맺고 있는 관계가 사람의 심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꾼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변화는 다시 ‘관계’에 영향을 미쳐 그 동안 맺어왔던 관계는 더욱 깊고 확고하게 나아갈 것이다.

내가 개업 노무사 생활을 접고 호죽노동인권센터에 몸을 담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매우 큰 변화이고 고마운 행운이다. 나는 호죽노동인권센터의 활동을 통하여 그 동안 나를 가르쳐왔던 노동자들과 보다 깊고 좋은 관계를 맺어갈 것이고 그러한 관계가 나를 충만하게 할 것이고 성장시킬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늦기 전에 한 번씩 나 자신을 성찰하겠다고 다짐한다. 나를 둘러싼 사람과 환경과 그리고 이 세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 관계가 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가.

김미경 YWCA 여성종합상담소장 노창선 충주대교수, 시인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정승규 청주대교수, 변호사 최용환 충북개발연구소 연구위원 허원 서원대교수,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 김주열 건축사

2008 새해를 맞아 ‘오늘을 생각한다’ 필진 8명을 새롭게 모셨습니다. 충청리뷰의‘올곧은 말 결고운 글’을 함께 만들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한해동안 애써주신 필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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