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나쁘다고들 야단입니다. 택시를 타도  손님이 없다고 푸념이고 저녁자리, 두  서넛만 모여도 경기가 말이 아니라고들 입을 모읍니다. 어떤  이는 IMF 때보다도 더 불경기라고도 말합니다. 모두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힘겹기에 나오는 하소연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청주 근교의 골프장엘 가보았습니다.  팔불출에도 못 낀다는 ‘골맹’이라서 골프를 치러 간 것은 아니고 어떻게 하다 가  보게 되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은 수많은 고급 차들이 꽉 들어차 빈자리를 찾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널찍한 2층 식당에는 골퍼들로 가득했습니다.  모두 하늘의 별 따기라는  부킹을 통과해 온 힘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변호사도 보였고 도의원, 교수, 사장,  여성단체 대표까지 소위 지역의 내로라하는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모두들 골프 얘기로 희희낙락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이 흥겨워 보였습니다.

창 밖 잔디밭에는 경기직전의 축구선수들처럼 많은 이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휴일 골프장은 말 그대로 흥청대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불경기와는 거리가 먼 딴 세상이었습니다.

얼마 전 노무현대통령은 부인과 측근들을  데리고 골프를 쳤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골프는 대개 쉬쉬하는 것이 관례지만 이날만은 이례적으로 대변인 발표까지 해 신문 방송들이 이를 친절히 알렸습니다. 경제가 어려워 그것을 활성화시키려고  대통령이 일부러 골프를 쳤다는 것이고 그래야 잘 사는 사람들이 골프를 치게 돼 경기가 활성화 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조깅과 등산을 즐겨했습니다. 95년 1월 중부매일 창사5주년 특별인터뷰 때 나는 “왜, 골프를 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등산도 좋은데 골프는 무슨 골프…”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에는 ‘국민들이 고생하는데 대통령이 골프를 칠 수 있겠느냐’는 뜻이 담겨 있는 듯 했습니다. 그 때문에 김 대통령 임기 중 골프 애호가들이 몸이 근질거려 송신증을 내던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딱합니다. 대통령이 골프를 쳐야 경기가 풀리는 경제구조도 그렇거니와 골프로 시범을 보여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통령의 순진한 발상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부인까지 동행해 골프를 쳐야  경기가 살아난다? 맞습니다, 맞고 요가  아닙니다. 그 뒤 경기가 살아났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경기가 나쁘다면서 골프장 룸살롱 고급음식점은 문전성시입니다.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한번 가 보십시오. 불경기가 되면 제일 먼저 어려움을 겪는 건 가진 것 없는 서민들입니다. 서민들이야말로 평소에도 어렵고 불경기가 되면  더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을 원망 안 합니다. 그저 내 못난 탓이라고만 생각할 뿐입니다.

경기가 나쁘면 낭비를 줄여야 하는 건 첫 번째 상식입니다. 요즘 독일, 일본에서는 음식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합니다. 경기가 나빠지니 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룸살롱 드나들고 골프 치면서 경기타령을 합니다. 자가당착입니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나라가 어려우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가 절약을  하고 근검한 생활을 해야합니다.

그게 국민의 도리요, 정도입니다.

최근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이 비상경영체제로 들어가 임원들의 골프를 자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6일은 현충일. 나라 위해 몸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머리 숙여 기려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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