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동 목사님 영전에

정목사님과 함께 보낸 시간은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정목사님과 함께 견뎌온 시대는 저도, 우리 모두도 고통스럽던 시대였습니다.
정목사님과 함께 한 일은 어렵고 힘들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정목사님과 함께 계획하는 일은 늘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정목사님과 함께 한 집회에는 외로운 이와 의로운 이 몇이 모여 있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정목사님은 멈추는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정목사님은 포기하는 적이 없었습니다.
어제 거리에서 얻어맞고 짓밟혔어도 오늘 다시 그 상처를 씻으며 거리로 나왔고 오늘 쓰러지면 내일 다시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기도하고 내일 또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도 고통 받으시면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을 찾아다니셨습니다. 당신도 가난하면서도 더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셨고, 당신도 핍박받으시면서 짓밟히고 버림 받은 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높은 곳만을 쳐다볼 때 당신 스스로 넝마를 메고 빈민들 곁으로 갔고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옆에 이름 있고 돈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지만, 목사님은 청소부와 운전사와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사꾼과 쫓겨난 여성노동자가 옆에 있는 걸 행복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정목사님은 단정하게 차려 입고 세련된 언어로 현란하게 하느님을 찾으며 강론하는 목회자가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의 언어는 거칠고 투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거칠고 투박한 말씀 속에 다른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진정한 하느님의 음성을 담아내는 분이셨습니다.
목사님은 말 몇 마디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목사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분이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정목사님과 함께 일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목사님이 늙고 병들고 기력이 옛날 같지 않고 몸져누우시면서 우리는 끼리끼리 흩어져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일은 지난 시대처럼 고통스럽지 않고, 우리가 진 짐도 지난 시절처럼 무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때처럼 온몸을 다 던져 일하지 않고, 생애를 다 던져 싸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에 감동과 눈물도 사라지고 진정성도 엷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목사님은 우리 곁을 떠나십니다.
우리 생애 중에 가장 고통스러웠고 가장 힘겨웠으며 가장 크게 아파하던 시절은 정목사님과 함께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시대가 무엇인지, 역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 거리에서, 감옥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 곁에서 함께 배우던 시절은 우리 청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고통 속에서 아름답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우리들 중에 우리가 가장 힘들었을 때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던 목사님의 그 온기는 우리 몸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막막해 할 때,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 있을 때, 우리를 향해 걸어오시던 그 발자국소리는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그 간절한 목소리, 우리를 위해 외치던 그 함성은 이 거리 골목골목에, 우리 옆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장 앞에 서 계시던 정목사님
가장 먼저 시작하여 가장 늦게까지 남아 계시던 정목사님
언제나 시대에 가장 가파른 곳에 서 계시던 정목사님
한 번도 다른 이의 아픔을 외면해 본 적이 없는 정목사님

이제 영결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이 어떻게 한평생을 다 던져, 누구를 위해 사시다 오는가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정진동 목사님,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실 정진동 목사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고 길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2007.12.13
도종환 드림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