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의장들 총선 넘보기 본격화
오장세 도의장 “대선기여도로 공천을”
그 가운데 하나가 정치권, 특히 국회와 지방의회의 위치 설정이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된 지 16년이 흘렀지만 지방의회 의원들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흔히 지방의원들의 자질을 그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1948년 제헌의회 이래 6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국회의 수준이 자랑할 만큼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지방의회 부활 이후 4차례 총선이 실시됐지만 지방의회 의원 출신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사례가 전혀 없다. 아예 도전을 꿈꾸지도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몇몇 도의원이 예비 사무실을 냈지만 결국 본선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포기한 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대선과 불과 넉 달의 시차를 두고 실시되는 2008년 총선에서는 지금까지와 다른 결과가 도출될까? 일단은 도내 지방의원 가운데 가히 ‘투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충북도의회 의장과 청주시의회 의장이 총선을 넘보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전직 시군의회 의장들이 대거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캠프에 포진한 것도 심상치 않다. 이 후보의 경우 정계 복귀의 명분으로 제시했던 스페어론이 검찰의 BBK 수사발표로 빛을 잃은 가운데, 대선 레이스를 완주하려는 목적이 사실상 내년 총선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 경우 전직 지방의회 의장 가운데 상당수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장세 충북도의회 의장이 2006년 12월 공석 중이던 한나라당 청주상당 당원협의회 조직위원장 공모에 원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을 당시만 하더라도 오 의장의 총선 출마는 그저 희망사항일 뿐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경쟁자가 민선 3기 청주시장을 지낸 당시 한대수 충북도당위원장(현 상당구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한대수 위원장은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청주시장으로 재기에 성공했으며, 2006년 6월 윤경식 전 의원을 누르고 충북도당위원장에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위상이 한껏 높아진 상태였다.
특히 2001년말 대선 패배, 2004년 총선 완패 등 당이 암흑기를 헤매는 동안에도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는 점에서 2008년 18대 총선에서 홍재형 의원(대통합민주신당)과의 설욕전은 떼놓은 당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오장세 의장의 정치적 계보는 박근혜 전 대표였다. 한대수 위원장이 당시 도당위원장이라는 자리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지만 명백한 MB 계열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기댈 언덕은 박 전 대표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 의장은 2007년 1월3일 박 전 대표의 사무실에서 열린 신년행사에 일부 도의원을 이끌고 참여함으로써 세간의 추측을 ‘설(說)’ 이상으로 발전시켰다.
오 의장은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확실하게 이명박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으며, 2007년 4~5월 도지사의 인사와 관련해 인사특위 구성을 추진함에 따라 지사와 의장이 ‘朴-李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는 관전평을 낳기도 했다.
오 의장은 이 과정에 대해 “내가 당초 박근혜 계열로 분류된 것은 사고지구당 당원협 조직위원장을 신청하면서 정치구도 상 언론이 자동 분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박근혜 전 대표도 훌륭하지만 한마디로 말해 공주 같은 사람이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것은 존경심에서 나온 결정”이라고 말했다.
오 의장, 이끌렸나 스스로 택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의장의 선택에 대해서는 뭔가 중간 고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정은 분명치 않지만 이명박 후보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으로부터도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것이 중앙선대위 관계자의 증언이다.
중간 고리 역할과 관련해 이를 스스로 밝힌 사람은 권영관 전 의장이다. 권 전 의장은 지난 8월 충청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원종 전 지사를 MB 측으로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면서 “원래 오 의장이 박근혜 전 대표 지지자였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 아니냐. 내가 MB를 만나게 해줬고 그 뒤로 지지후보를 바꾸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의장과 MB 캠프를 연결했을 것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인물은 청주중학교 45회 동기인 김병일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장이다. 김 본부장은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뉴타운사업본부장, 서울시 대변인을 맡았던 MB의 최측근이다. 김 본부장은 후보검증 공방이 가열된 지난 10~11월 국정감사에서도 서울시 측의 주요 증인으로 단골 출석해 MB를 향해 쏟아지는 창끝을 막아내는 방패역할을 했다.
오 의장은 이에 대해 “김 본부장과 학창시절 가까이 지냈다.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김 본부장과 몇 차례 통화는 했다. 그러나 김 본부장이 먼저 접촉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결국 스스로 택한 결정이라는 얘기다.
오 의장은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책을 여러 권 읽었고 살아온 인생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이렇게 열심히 살 수는 없다는 존경심 때문에 고뇌의 순간이 있었지만 결단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오 의장은 MB의 재산형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깨끗한 사람이다. 현대의 톱에 있었던 사람이고 재산을 모으려했으면 수 조원은 모았을 것”이라고 옹호했다.
오 의장은 청주중을 졸업한 뒤 서울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려했으나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자 친척이 있는 대전에서 고등학교(대전고 53회)를 졸업했으며,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학비를 마련해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을 나온 뒤 잠시 건설회사에 근무하다 건설업을 거쳐 청소년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는 오 의장의 지난 3월 재산 신고액은 23억7700만원이다.
휴대폰 연결음악도 이명박송
어찌 됐든 오장세 의장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MB를 지지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경선 이후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세력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것도 인정하고 있다. 오 의장이 표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경선 이후 한 달 만에 실시된 도당위원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에 이어 지지자들과 함께 술자리 출정식을 가졌다는 설까지 퍼지면서 ‘점령군 행세를 하냐’는 강한 반발에 부딪혔던 것.
오 의장은 이에 대해 “박 지지자 쪽에서 애증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면서 “게임이 끝났기 때문에 다음을 준비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겠냐”고 해명했다.
오 의장은 자신의 총선 도전설에 대해 경선 이후보다 무게를 싣고 있다. 올 초만 하더라도 한나라당 도의회 의원 27명 가운데 19명이 박 전 대표를 지지했고, 정우택 지사도 친박(親朴)으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고생했다는 것을 중앙 캠프에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오 의장은 자신의 활동에 대해 “언론에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한마디로 말해 목숨을 걸고 했다”며 그동안 우유부단하게 비쳐온 이미지와 달리 결기어린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오 의장의 과단성을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는 휴대폰 연결음악(컬러링)을 슈퍼주니어의 노래 ‘로꾸거’를 개사한 이명박송으로 선택한 것. 오 의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 때 상대의 휴대폰 화면에는 ‘이번에는 이명박’이라는 문구가 자동으로 표시된다.
이처럼 예상 밖의 저돌성은 충북 선대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묘한 결과로 이어질 뻔 했다. 한대수 상당위원장이 공동선대위원장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기자회견 직전 일부 인사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포함시키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한대수 위원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위원장은 대선 후보 경선 이후 충청리뷰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공천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것이고 ‘후보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그 다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당이 기여도와 당선 가능성, 신망도 등을 평가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권오을의 성공… 지역에선 비극
오장세 의장이 자신의 정치적 꿈과 관련해 모델로 삼는 인물은 경북 안동의 권오을(한나라당) 3선 의원이다. 권 의원은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할 때 경북도의회 최연소(34세) 의원으로 당선된 뒤 1996년 눈높이를 올려 15~17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권 의원은 2004년 7월 지방의회 의원 유급제, 광역의회 의원 보좌관제도 도입등을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지방의회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오 의장은 “지방의회 발전을 위해 보좌관 제도와 의회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 등 해결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기존 국회의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가능하면 많은 지방의회 의원들이 국회로 진출해 제2, 제3의 권오을 의원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역의 선례를 살펴보면 비극적인 결말뿐이다.
충북도의원으로 맹활약을 펼쳤던 김춘식, 윤병태 전 의원이 16대 출마를 염두에 두고 사무실까지 냈지만 결국엔 출마조차 하지 못하고 정치인생을 일단락 지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춘식 전 의원의 경우 당시 재선의 기획행정위원장으로, 차기 도의회 의장까지 넘보는 상황이었으나 과감한 결단이 가져온 결과는 예측 이상으로 엄혹했다.
현직 도의원들도 오 의장의 출마설에 대해 ‘진짜 출마하겠냐’,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충북도의회 Q의원은 “오 의장이 동료 의원들과 한 번도 이 문제를 상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라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기 내 총선 출마는 지방의회 의원으로 뽑아준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또 의장 임기 2년 동안 ‘의정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던 동료 의원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