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선율에 춤추는 철쭉의 물결
날씨가 춥고 스산해지면서 필자 또한 봄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소백산의 철쭉이다.
필자가『소백산』이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소백산을 제 집 드나 듯이 다닌 터라 소백산에 대한 기억은 어제 본 것처럼 너무도 생생해 마음은 벌써 비로봉 자락에 만발한 철쭉과 조우하는 듯 느껴진다.
5월말에서 6월초 국립공원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해발 1439m)과 연화봉, 국망봉에 옅은 분홍색의 철쭉꽃이 만발해 산악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철쭉제의 시작은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많은 수몰민들이 정든 고향땅을 떠나게 돼 1년에 단 한 번씩이라도 고향을 찾아 고향 사람들과 정을 나누게 하자는 큰 뜻에서 시작됐고 그것과 함께 신단양에는 공원을 만들고 실향민들의 애환을 담은 시비를 세웠다.
단양은 1읍 3개면이 충주댐 건설로 수몰됐고 2,684세대가 삶의 터전을 잃어 신단양과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살게 됐다. 그래서 수몰민들의 애향심을 달래주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는 소백산 철쭉제를 생각해 낸 것이다.
여기서 우선 소백산 철쭉제 산행 행사는 충북 산악연맹이 맡아 진행하기로 하고 우화교 다리밟기 등 문화 행사는 단양 문화원이 주관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소백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충북 쪽에선 한곳도 표시가 되지 않아 1983년 4월 5일 충청일보 산악회와 단양 성신양회 산악회가 공동으로 천동리 야영장에서 비로봉까지 6.8km을 200m 간격으로 높이와 거리를 실측해 말뚝을 박았다.
오전까지 화창했던 날씨가 오후 2시부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기온마저 영하로 뚝 떨어져 작업이 어려웠지만 간신히 갈무리를 하고 죽령 쪽으로 하산할 수 있었다.
제1회 소백산 철쭉제는 1983년 5월 31일 구단양 일원과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서 동시에 거행됐다. 구단양 단양여중에서 문화행사가 진행됐고 천동리 분교에서 전날밤 산악인 2천여 명이 모여 캠프파이어와 장기자랑을 펼치며 철쭉제 전야제를 축하했다.
신완섭 문화원장이 초헌관 제주(祭主가) 되고 산악회 임원들이 축관이 되어 돼지머리와 각종 제물들을 차려 산제를 먼저 지내고 철쭉여왕 선발대회가 이어졌다.
철쭉여왕은 산을 좋아하고 등산 경력이 많은 여인 중에서 장비를 잘 갖추고 얼굴이 고운 미녀를 선출해 진, 선, 미 3명에게 수상했다.
제1회 철쭉여왕에는 청주대 산악회원인 조철숙 양이 진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게 됐다.
소백산 철쭉제는 해를 거듭해 실시하다가 정상에서 실시하는 충북산악연맹 주관의 행사를 단양 문화원이 단일 행사로 치를 것을 제안해 4회부터는 철쭉제 행사 전반을 단양 문화원이 주관하고 있다.
초창기 문화 행사가 해마다 같은 내용으로 전개되어 비판의 목소리도 컸지만 1950년대 까지 내려오던 남한강 뗏목 문화 재연을 접목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들었고 호응도 또한 높아져 소백산 철쭉제는 어느덧 충북을 대표하는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먼저 시작한 뗏목 문화 재연이 강원도 평창과 정선에서 펼쳐지는 것에 비해 발전이 더뎌 규모면이나 재원면에서 밀리는 것이 다소 안타깝다.
25년의 역사를 지닌 소백산 철쭉제가 이제는 충북을 대표하는 축제가 아닌 남한강 전통과 어우러져 전국 규모의 큰 행사로 뻗어나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