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관 교수·구로다 후쿠미 탁경현 추모비 제작에 ‘한 뜻’
내년 5월 사천에서 제막식, 현재 한창 작업 중

금속공예가 고승관 교수(홍익대 조형대·괴산군 청천면 원도원리)와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51·黑田福美). 두 사람은 지난 10월 ‘국경을 초월한 만남’을 가졌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집돼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으로 활동하다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스러져간 탁경현의 추모비를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다. 탁씨는 경남 사천시 출신이나 일본 오키나와 해상에서 1945년 5월 억울하게 숨졌다.

‘가미카제’(신의 바람)는 1281년 고려ㆍ몽골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연합함대를 침몰시킨 계절풍을 가리켜 일본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연합군이 상륙하자 일본군은 연합군의 진군을 막는 수단으로 가미카제 특공대를 편성해서 공격했다.

그럼 구로다씨와 고 교수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 구로다씨는 지난 91년 꿈 속에서 한 조선 청년으로부터 한 맺힌 이야기를 듣는다. “비행기를 조종하다 죽은 것에 후회는 없지만 조선사람이 일본사람 이름으로 죽은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꿈이 너무 생생하고 이상했던 구로다씨는 이 때부터 조선청년의 정체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다 95년 요미우리신문에 이 내용을 칼럼으로 실은 뒤 청년이 가미카제특공대원 미쓰야마 후미히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제보를 받았고 사진을 본 뒤 확신을 갖게 됐다. 미쓰야마는 바로 조선청년 탁경현이었다. 탁씨는 일본 논픽션 ‘호타루 가에루(반딧불이 돌아오다)’와 영화 ‘호타루’의 모델이 됐던 인물.

▲ 고승관 교수가 제작한 추모비 모형. 태양새는 불사조를 의미한다.
구로다씨는 이 때부터 탁씨의 자료와 학적부를 찾고, 일본에 강제징집된 한국인들의 신원을 찾는데 노력해온 홍종필 전 명지대 교수(71)를 통해 탁씨의 유족들도 만났다. 그러면서 한국인 309명 등 태평양전쟁 희생자 23만8000여명의 이름을 새겨놓은 오키나와 추모공원 ‘평화의 초석’에서 탁씨의 이름도 확인했다.

1920년 경남 사천군 서포면 외구리에서 출생한 탁씨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시 오가와심상소학교, 리츠메이칸중학교, 교토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디어 탁씨의 신상을 밝혀낸 구로다씨는 한국에 추모비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추모비 모형 공개한 고승관 교수
구로다씨와 고 교수는 지난 10월 청주에서 만났다.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추모비를 제작해줄만한 조각가를 찾다가 고 교수를 생각하고 구로다씨가 연락해온 것.

고 교수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직전에 연락을 받고 일단 청주로 오라고 했다. 비엔날레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홍 교수, 일본 기자 등과 같이 경남 사천시로 내려갔다. 구로다씨는 내게 탁씨의 추모비를 제작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생각 끝에 작품을 하겠다고 승낙했더니 구로다씨는 펑펑 울면서 내게 절을 했다. 감격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천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일행들은 사천의 명소가 될 만한 추모비를 만드는데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 했다고 한다.

이어 고 교수는 “구로다씨는 나에 관한 자료와 탁씨가 생각날 때마다 매일 물을 주었다는 산호껍질을 가지고 왔다. 오키나와 해변에서 주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산호껍질은 추모비 안에 넣을 예정”이라며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을, 그것도 일본인 개인이 이런 일을 한다는 데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이 추모비를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당시 국가가 없었던 설움과 전쟁의 아픔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추모비는 순조롭게 진행돼 비문만 새겨 넣으면 된다. 지난달 29일 고 교수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추모비 모형과 구로다씨가 썼다는 비문을 처음 공개했다. 여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평화스러운 서포에서 태어나/ 낯선 땅 오키나와에서 생을 마친 탁경현/ 영혼이나마 그리던 고향 땅 산하로 돌아와/ 평안하게 잠드소서(앞면). 태평양전쟁 때/ 사천에서도 많은 이들이 희생되다/ 전쟁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비노니/ 영혼이나마 영원히/ 평안하게 잠드소서(뒷면)’

비문은 한글과 일본어를 한줄씩 넣는 것으로 제작되고, 탁씨처럼 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들의 이름을 찾는대로 기록한다는 것. 또 역사학자가 쓴 전쟁 이야기도 실어 전쟁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시켰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편 추모비는 전체 4m65cm 높이로 불사조를 의미하는 태양새가 장식돼 있다. 좌대는 청동, 위는 동으로 제작됐다.

고 교수는 “내년 5월 11일 탁경현의 기일에 사천시에서 제막식을 할 것이다. 추모비를 놓을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사천시와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이 추모비는 앞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천시의 명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구로다 후쿠미와 고승관 교수

구로다 후쿠미씨는 일본내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배우로 꼽힌다. 한국어에도 능통한 그는 한일관계 행사를 할 때 곧잘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이외에 아나운서, 작가로도 활동한다는 게 고승관 교수의 설명이다. 영화 ‘담뽀뽀’, 한일 합작 드라마 ‘프렌즈’ 등에 출연했고, 일본에서 여섯 차례나 한국 사진전을 열었다. 그리고 ‘서울 마이 하트’ ‘서울의 달인’ ‘사랑하므니다’ 등의 한국 관련 책도 출간했다.

구로다씨는 1983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배구경기대회에서 한국의 배구스타 강만수 선수에게 반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88서울올림픽 때는 일본에 한국의 모습을 전하는 TV 특집 프로그램 리포트로 활동했고 2002 월드컵 때는 한·일 월드컵 일본조직위원회 이사를 맡아 서울과 도쿄를 오갔다고 한다. 서울의 뒷골목 풍경까지 낱낱이 담은 책 ‘서울의 달인’은 월드컵 개막 때 출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익대 공예과와 경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홍익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고승관 교수는 우리나라 공예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중 한 명이다. 99년에는 초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기획위원장으로 행사의 틀을 짜는데 기여하고, 현재는 대한민국미술대전·서울미술대전·충북미술대전·한국현대조각대전 초대작가로 활동중이다.

개인전 5회, 단체전 다수 경험이 있고 벽초 홍명희 기념비 제작 등 각종 환경조형물도 많이 남겼다. 특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기획·운영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지난 87년 정착한 청원군 청천면 도원리에서 도원성미술관을 짓고 돌탑 286개를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고 교수는 돌탑 5000개 쌓는 게 목표라고 했다. ‘Time and Space’가 영원한 작품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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