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단재문화제전서 ‘丹心 배워라’ 역설

고전학자이자 철학가인 도올 김용옥의 거침없는 독설이 불을 뿜었다. 도올 김용옥은 12월8일 오후 5시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단재문화예술제전 개막식에 이어진 특강에서 ‘단재 신채호를 모르는 자, 이 민족을 이끌 수 없다’는 주제로 한 치도 굽힘없이 살았던 단재의 치열한 삶에 빗대 시대정신이 실종된 현실의 상황을 강하게 질타했다.

대선을 불과 열흘 앞둔 ‘때가 때인지라’ 청중들은 나팔꽃처럼 귀를 열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도올은 “선거법에 걸릴까봐 말을 마음대로 못하겠다”면서도 “이놈이나 저놈이나 비슷하니까 칼을 갈 수가 없다. 국민 모두가 경제라는 미몽에 미쳐 단재가 보여줬던 시대정신이 퇴보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칼을 갈 수가 없다’는 것은 단재가 뤼순감옥 수감중에 병세가 악화돼 죽음을 예감하는 상황에서도 친일파가 돈을 보태서 이뤄진 보석을 거부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심정을 옮긴 옥중시의 일부를 수정, 인용한 것이다.

도올이 개막사에서도 낭송한 옥중시는 ‘열 해를 갈고 나니 / 칼날은 푸르다마는 / 쓸 곳을 모르겠다 / 춥다한들 봄추위니 / 그 추위가 며칠이랴 / 자지 않고 생각하면 / 긴 밤만 더 기니라 / 푸른 날이 쓸 데 없으니 / 칼아! 나는 너를 위하여 우노라’라는 내용으로 10년 간 수감생활을 하며 일제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갈았음에도 승리를 눈앞에 두고 죽음을 맞이하는 단재의 웅혼한 절개가 잘 드러나 있다.

최남선 등 변절자 강하게 질타
도올은 단재 신채호 선생을 역시 청주 출신의 예관 신규식 선생과 함께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살아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떠받들면서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 최남선과 단재의 고령 신씨 선조인 신숙주를 거침없이 비난해 고령 신씨 문중에서 참여한 4~5명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가담한 신숙주는 천하의 배반자다. 조선을 인정하지 않는 고려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이방원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세조의 찬탈은 비겁한 우파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신숙주를 비난하자 문중 관계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퇴장한 것.

도울은 그러나 강연 말미에 “신숙주가 지은 죄는 단재가 다 갚고도 남는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최남선에 대한 비판은 기미독립선언서가 ‘비겁한 문장’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단재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오독립선언서와 문장을 비교해가며 민족자결주의에 기반을 둔 기미독립선언서의 나약성을 질타한 것. 도올은 “최남선은 자기가 쓴 독립선언서에 서명도 하지 않았다. 단재는 멀리 타향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받아보고 욕을 하며 찢어버렸다. 나 같아도 찢어버렸을 것”이라며 대중에게 알려진 근현대사가 크게 왜곡돼 있음을 지적했다.

청주인 단재를 배워라 ‘청주예찬’
도올은 이날 특강 끝부분에서 무심천과 용화사, 용두사지철당간, 직지심체요절 등 청주의 역사·문화적 자산이 등장하는 자작시를 낭송해 큰 박수를 받았다. 도올은 “청주로 내려오는 길에 차 안에서 썼다”며 작은 수첩에 적은 청주예찬을 낭송했다.

‘단재의 서슬 퍼런 칼날에 가슴을 버히고 버히고…’로 시작되는 도올의 시는 ‘그 피를 무심천에 뿌리리라’는 구절을 통해 비장함을 내비치면서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들고 용두사지철당간에 ‘준풍’이라는 고려의 자주적인 연호를 사용했던 청주사람이라면 단재의 단심을 배워야 한다는 요지를 담고 있다.

도올의 청주예찬은 특강 뒤에 청주시내 한 식당에서 이어진 뒤풀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일부 참석자들로부터 ‘무심천 등의 장소에 시비(詩碑)로 만들어 세웠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 도올은 이에 대해 ‘시를 다시 다듬어 제공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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