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옛날이야기를 하나 찾아보았습니다.

어느 가난한 사람이 아내와 첩을 한집에 거느리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날마다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는 늘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도대체 영감은 누가 그렇게 날마다 술과 음식을 사 주는 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귀하고 부한 이를 만났노라”고 대답을 합니다. 의아히 여긴 아내가 첩에게 말하기를 “저 양반이 날마다 술과 밥을 배부르게 먹고 돌아오는데 함께 마시고 먹는 이를 물으면 다 부귀한 자라고만 하네. 일찍이 부귀한자가 한번도 집에 찾아온 일이 없으니 내 오늘은 영감을 따라가 보리라”하고는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를 몰래 좇아갔습니다.

얼마를 가도 누구 한 사람 아는 체 하는 이가 없는데 아니나 다를 까, 동곽(東廓)의 공동묘지로 향해 간 남편은 장사지내는 곳에서 술과 밥을 얻어먹더니 그것도 모자라 다시 다른 장사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가. 남편이 날마다 배를 채우는 것은 부귀한 자들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이처럼 공동묘지에서의 걸식이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참담하여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무릇 가장이란 사람은 가족들이 평생을 우러러 바라보는 존재인데 속을 알고 보면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는갚라며 첩을 부둥켜안고 함께 통곡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남편은 그 날 저녁도 술에 취해 돌아 와서는 여전히 허세를 부리면서 “잘 먹고 왔네”하고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남편의 두 얼굴을 재미있게 묘사한 이 이야기는 ‘맹자’ 이루장(孟子 離婁章)에 나옵니다. 맹자는 이야기 끝머리에 “남자가 비천하게 부귀 영달을 구하는 것을 처첩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 울지 않는 자가 있겠는갚라고 사족(蛇足)을 달았습니다.

이 땅의 남편들, 아버지들에게 5월 한 달은 참으로 바빴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로 이어진 지난 한 달은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도리를 다 하느라 눈 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음을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의 가장들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가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아야하는 절박함이 바로 그것이요, 그러 자니 자존심 상하는 비굴한 처신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게 이른바 이 나라 가장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남편의 자리가 확립돼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으로서의 가부장적 권위는 옛 말이 되어 남편과 아내는 피차 ‘가깝고도 먼 당신’이 되어있고 아버지로서의 존경은커녕 설자리조차 잃고 ‘고개 숙인 남편’, ‘고개 숙인 아버지’가 되어있는 것이 공통된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식자들은 오늘 우리의 가정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합니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전통적 가정의 질서가 무너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일 터입니다. 며칠 전에는 능력도 없이 술만 먹고 주정을 일삼는 가장을 아내와 딸들이 목 졸라 죽인 사건 마저 발생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들이 사회에 나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수모를 겪어야하는 줄을 잘 알지 못 합니다. 남편들이 권세를 쟁취하든, 부를 축적하든, 또 그렇지 못하든 얼마만큼의 고통과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가를 이해하지 못 한다는 말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간 남편이 공동묘지에서 걸식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과연 몇 사람의 아내가 그것을 알기나 할까.

좋은 가정은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 이해와 신뢰와 사랑을 함께 나눌 때 가능합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가정의 소중한 의미를 되 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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