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_ 충청북도교육청 장학사

언제부턴가 혀를 자꾸 깨문다. 음식을 맛있게 먹다가 문득 혀의 1/3쯤 아랫쪽 부분을 콱 깨물고는 한참씩 모든 동작을 정지하고 통증이 멈추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거울 속의 혓바닥을 들여다보면 약간 패일 때도 있고 충혈된 채로 피가 맺혀 있기도 하여 그 아픔이 여간 큰 게 아니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잘 헤아려 그가 원하는 일을 알아서 먼저 해 주는 사람을 보고 ‘입 안의 혀 같다.’고 한다. 이는 혀가 그만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며 적어도 입 안에서는 능숙히 자기의 역할을 해내는 육신의 지체임을 나타내는 속담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입 안의 혀가 자꾸 이빨에게 꼬리를 밟히고 상처를 입는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든다는 증거이다. 세월이 가면 모든 육신의 기능이 저하되는 것이지만 이 혀도 예외 없이 기능이 퇴락해 가는 것일 게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육신의 모든 기능은 서서히 떨어지며 가을 나뭇잎이 단풍으로 바뀌면서 겨울나기 채비를 하는 것처럼, 육신의 건너편에 있는 죽음의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힘이 넘쳐 발바닥을 땅에 미처 대기도 전에 통통 튀어오르며 천방지축 날뛰던 청년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뭉쳐지는 근육의 모양새가 제법 우람하게 만들어져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잡아가며 대견해 하던 때가 몇 년 전 같은데, 사람의 머리로 우리의 끝날을 알기야 하랴만 인간의 살고 죽는 대략의 일들을 어림잡아 계산해 보면 이제는 오후 햇살이 따사로워서 반가운 겨울 초입쯤 어디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 배구라도 한 게임 뛰고 나면 사흘 넘게 앓아야 하는 육신을 보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고 귀밑이 부쩍부쩍 하얗게 바뀌는 모습을 보며, 이마며 목덜미며 눈가의 주름살이 이제는 쳐지기 시작하는 세월의 두께를 보며, 불현듯 살 날이 산 날보다 적은 것을 계산해 보며 창조주를 생각한다.

내게 호흡을 시작하게 하신 이가 내 호흡을 거두어 갈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그 분의 뜻일까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온 몸을 제어하기는 쉬워도 세 치 혀는 능히 제어하기 힘들다는 이 작은 지체를 보며 이제부터라도 더 좋은 축복의 말로 상대를 대해야겠다는 것과 이 부드러운 혀가 무서운 칼이 되지 않도록 꼭 이 안에 가두어 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한 해의 끝에 오면 지금까지 해 오던 것들을 잘 갈무리해서 작은 한 열매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해야 하며, 주변 사람들을 위해 지금까지 익혔던 이런저런 달란트를 활용하는 것이 여력의 할 일일 것이다.

낙엽 되어 구르기 전에 더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이기 위해서 마지막 해야 할 일은 곱게 단풍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찬바람 불면 미련 없이 줄기에서 뚜욱 떨어지는 것이 추하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의 발 아래 육신을 묻고 그 나무를 위해 썩어지는 것, 그것이 ‘오고 감’의 순리일 것이다.

혀의 상처가 아물면 다시 고개 들 교만을 아예 없애도록 기도할 일이다. 그래도 잘 안 될 때에는, 그 때는 독한 맘먹고 나 스스로 혀를 깨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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