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파지수집 할아버지의 고단한 겨울나기

첫눈이 내린 탓에 쌀쌀한 날씨를 보인 22일 오전 10시 청주대학교 정문 인근 삼미파전 앞 도로에서 만난 전한군씨(72·가명·청주시 상당구)는 두터운 점퍼 차림을 한 채 종이 상자를 손수레에 싣고 있었다. 전씨는 이날 오전 9시 집을 나와 내덕동 일대를 돌았지만 날씨 탓인지 종이상자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씨의 시선은 내내 골목 이곳 저곳을 살피는 눈치였다. 전씨가 끄는 손수레에는 종이상자가 몇개만이 실려 있었다.

전씨는 아내가 세상을 뜬 20년 전부터 혼자 살고 있다. 이런 저런 일을 해봤지만 여의치 않아 10여년째 파지와 고물을 주워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자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들 제밥벌이조차 힘든 형편이라 손을 내밀 처지가 아니다.

전씨는 아침, 저녁 하루 두번씩 동네 주변을 돌며 폐 종이상자와 헌옷, 고물 등을 줍지만 새벽, 밤 시간에 같은 일을 하는 노인들이 많아 생각만큼 '차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틀에 한번 꼴로 고물상에 내놓지만 파지값이 1에 100원에 불과해 손수레를 가득 채워도 손에 쥘 수 있는 건 2000원∼3000원 정도다. 한달간 부지런히 일을 해야 20만∼30만원 정도 벌 수 있다.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옛 MBC 앞 도로 앞에서 만난 김순임씨(82·가명·청주시 상당구 내덕동)는 '장바구니 손수레'에 폐컴퓨터와 파지를 가득 싣고 고물상을 향해 걷고 있었다. 김씨는 바퀴가 횡단보도에 걸릴 때 마다 힘겹게 끌어올린 후 긴 한숨을 내쉬곤 했다.

김씨 방은 기름보일러가 놓였지만 워낙 비싸 전기 장판으로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파지라도 주워 전기세를 낼 생각이지만 공치는 날이 많아 여간 힘겨운 게 아니라고 한다. 게다가 도로가 빙판으로 변하면 다칠까 겁나 나설 생각을 접어야하는 것도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다. 이런 탓에 김씨는 긴 겨울이 야속하기만 하다.

김씨 역시 자식들이 외지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자식 얘기를 꺼내자 눈물을 훔치며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며 "이웃들이 조금씩 도와줘서 살지 그나마 도움이 없었으면 벌써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혼자 겨울을 나는 65세 이상 노인이 청주만 해도 2300여명에 달한다. 이중 638명은 생계비를 지원받지만 나머지 노인 대부분은 전씨, 김씨와 비슷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주20시간 이상 일을 해 생계비를 벌면 지원이 중단되기 때문에 이들처럼 거리로 나서는 노인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권혁란 청주산남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는 "파지를 줍는 노인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일부 동에서는 통장이 구역을 구분해 나눠줄 정도"라며 "주1회 방문과 주 3회 전화 확인 등 29명의 생활지도사가 1명당 22명의 노인을 챙기고 있으나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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