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조 처음으로 LG화학 시도, 도미노 예고

지난 9일 LG화학노동조합(위원장 윤문용)은 청주와 오창공장을 비롯한 전국의 5개 사업장에서 일제히 대의원 선거와 함께 산별노조 전환 찬반을 묻는 투표를 실시했다.
민주노총 자체 규정상 개별노조의 산별 전환은 과반수 투표와 3분의2 이상 찬성해야 한다.

결과는 투표율 98%에 찬성율 57%로 부결. 하지만 민주노총이나 LG화학 노조는 ‘절반의 성공’ ‘자존심은 지켰다’라며 만족해 하고 있다.

▲ 도내 대기업노조 처음으로 LG화학노조가 산별전환을 시도했다. 비록 부결되기는 했지만 과반수 찬성을 이끌어내 노동계의 주목을 받았다.사진=육성준기자
지난해 현대·기아·대우·쌍용 등 자동차 4사 노조가 대거 산별노조로 전환한 것과 관련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반면 노동계는 미소를 머금었다. 노조의 산별전환이 그만큼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LG화학 노조의 산별 전환 시도가 자동차 4사의 그것 만큼 파장이 크지는 않지만 도내 대기업 노조 중 첫 사례라는 점에서 지역 노동계의 주목을 받았다.

산별노조 전환 왜?
현재 민주노총 산하에는 언론, 금속, 화학, 보건의료, 공공서비스, 운수 등의 산별노조가 조직돼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산하 개별 기업노조를 산별노조로 묶으려 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산별노조로 전환되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대기업과 공동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산별교섭을 통해 관련 업종 최저임금제를 합의할 수도 있고 기업간 임금 격차도 줄일 수 있다.

실제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을 통해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일정액을 적립,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현실화 되기도 했다.
특히 원청과 하청업체가 하나의 산별노조로 통합됨에 따라 거대 기업의 횡포를 막는 역할도 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대기업 노사협상이 끝나면 대기업은 하청업체의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고 그 결과 원청과 하청업체간 임금격차가 더 벌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돼 왔다. 산별노조로 단일화 된다면 이같은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산별노조 조직에 힘을 쏟는 깊은 속내는 노조의 힘을 더욱 키우기 위해서라는 게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 LG화학노조가 산별전환 투표가 부결됐으면서도 자존심을 지켰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이면에는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냄으로서 노조 응집력을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는 자체 평가 때문이다.

특히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비정규직 철폐나 FTA 반대 등 노동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다. 개별 기업노조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 내부적인 문제가 사측과의 주된 교섭대상이었다면 산별노조는 이 비중이 줄어든 대신 노동계 전반적인 현안을 안건으로 다룰수 있어 그만큼 노조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관계자는 “산별노조를 지나치게 노조 조직력 강화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해방이후 노동운동은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이뤄지다가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사라진 것이다. 기업간 임금격차 해소 등의 장점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고 말했다.

무쟁의 LG화학노조에 노동계 주목
비록 LG화학 노조가 산별노조 전환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재추진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고 지역 노동계의 대세로 굳어질 경우 회사측은 노사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현재 도내 산별노조는 아직 초보단계다. 금속노조에 캄코나 하이닉스·매그나칩하청지회 정도가 활발히 활동하며 보건의료노조도 건대충주병원, 청주의료원, 충주의료원 등 민주노총에 큰 동력이 되는 사업장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LG화학노조가 산별전환을 결의한다면 화학섬유노조가 거대 조직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활동이 왕성한 정식품이나 한국네슬레 노조는 이미 산별(화학섬유)전환 결정하고 가입만 남겨둔 상태다.

이 때문에 2003년 이후 무쟁의를 이어 온 LG화학 노조의 산별전환 시도가 노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반면 회사측은 자사 노조와의 임단협 외에도 산별교섭을 따로 해야 하는 이중교섭이 불가피해지고 시간적 경제적 부담도 가중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별 기업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나 FTA 등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정치적인 문제가 협상안건으로 올라온다면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계했다. 특히 도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인맥이나 학맥을 기반으로 노사관계가 형성된 경우가 많아 산별노조가 보편화 된다면 노정업무 시스템 자체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노정업무 담당자는 “지역사회 특성상 노사협력 또는 노정업무 담당자 중에는 지역출신 인물이 많다. 은연중에 노사관계에 끈끈한 인맥이나 학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가미됨으로서 서로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비교적 편했으나 산별노조 체제로 간다면 노사관계도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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