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참전미군 51년만에 총상주민에게 사죄편지





조지 얼리에게 편지를 받은 서정갑씨가 편지와 사진을 보고 있다
영국BBC 취재과정서 확인, 발포 명령 체계 논란일 듯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양민학살사건과 관련, 당시 미군 중대장이 발포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참전미군의 사과편지를 통해 밝혀졌다. 노근리 대책위원회(위원장 정은용)는 지난 14일 사건 당시 미군 제1기갑사단 7기병연대 2대대 박격포중대 상병으로 근무한 조지 얼리씨(George Early·68)가 피해주민 서정갑씨(64)에게 보낸 사죄편지에 이같은 내용이 담겼다고 발표하고 편지를 공개했다.
서씨는 51년전 노근리사건 현장에서 11살의 소년으로 총상을 입었으나 조지 얼리씨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서씨는 가족과 인근 주민 등 500∼600명이 피난민 대열 속에 섞여 국도를 따라 걷다가 미군들에게 저지돼 강제로 경부선 철도 위로 인솔됐다. 미군은 피난민들의 짐과 몸검색을 마친 후 미군 전투기의 공중공격을 요청, 현장에서 100여명의 피난민 숨졌다. 이때 서씨는 발목에 파편을 맞았고 가족들과 헤어진 채 철로위에서 노근리 쌍굴 후면쪽으로 내려왔다.

총알 두방 맞고 정신잃어

하지만 쌍굴 뒷편 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미군들이 쏜 총에 무릎을 맞고 논밭을 기어 도망가던 중 다시 사타구니 부근에 총을 맞고 정신을 잃었다. 이때 한 미군병사가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매는 서씨를 위생병에게 인계해 응급치료를 받게했고 다시 미군짚차에 태워 김천에 있는 병원을 후송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됐다. 51년전 총에 맞아 죽어가는 11살 소년을 안고 위생병에게 치료를 부탁한 장본인이 바로 조지 얼리씨였다.
한편 서씨는 지난해 5월 영국 BBC방송의 노근리사건 현장취재 당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한국취재를 마친 BBC 방송팀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참전미군을 상대로 취재를 벌였고 이때 서씨가 증언한 비디오테이프를 본 조지 얼리씨가 51년전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던 것. 조지 얼리씨는 서씨의 생존사실에 대해 기뻐하며 BBC취재팀장에게 자신의 편지와 사진을 서씨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해 노근리대책위에 올초 전달받게 됐다. BBC방송의 노근리사건 프로그램은 오는 2월 1일(영국 기준) 타임워치라는 역사다큐멘터리 시간에 방영될 예정이다.

노근리 참전미군 최초 사죄표명

조지 얼리씨의 편지증언 내용은 노근리 발포책임에 대한 또하나의 증거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노근리 사건에 연관된 미군 부대의 부대원으로 공식 확인된 미국인이 한국인 피해자에게 진상을 밝히고 공식 사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99년 참전미군이었던 에드워드 데일리씨가 노근리를 방문해 유감표명을 했지만 그가 노근리에 주둔했었는지는 논란으로 남아있다.
미정부는 노근리대책위의 손해배상 요구에 대해 지금까지 "미군이 양민 다수를 사살한 점은 인정하지만 발포 명령자와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손해배상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에대해 노근리대책위는 "조지 얼리씨는 노근리 사건때 피난민에게 발포했던 부대의 부대원이었다. 현장에 있던 미군이 직속상관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가며 발포명령을 받았다는 것은 상부의 지휘계통을 통해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모든 진실을 공개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근리대책위는 미국 현지 변호인을 통해 미정부와 포괄적인 보상문제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혁상 기자





조지 얼리씨 편지 전문“당신이 죽은 줄 알고 51년간 고통속에 살았다”
친애하는 친구에게
이러한 편지를 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노근리 사건 당시) 나는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지난 51년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나는 당신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무척 기쁩니다. 이제는 나의 악몽을 끝낼 수 있게 되었군요. 당신이 총을 맞은 후 부상을 치료받도록 하기 위해 나는 어려움속에서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부상을 입은 당신이 나중에 살아났는지 여부는 알 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나는 15세에 군대에 입대해서 그 사건 당시 겨우 16세였습니다.
당신에게 총을 쏜 사람의 이름은 브루노(Bruno)입니다. 그는 내 중대장의 보디가드였습니다. 브루노가 당신에게 총을 쏜 후에 우리(부대원)는 그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에 다른 보병 중대로 전출을 갔습니다. 나는 그가 전쟁에서 살아 남았는지 여부는 모릅니다. 그는 우리 부대의 명예를 훼손시켰습니다. 우리 중대장은 부하들과 관련한 다른 사건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고 형무소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날 밤 한번은 중대장이 기관총으로 민간인들에게 사격하라는 명령을 거절했다고 나를 총으로 처형하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에 대한 비디오테이프(영국 BBC 취재팀이 한국에서 서정갑씨를 취재한 비디오테이프)를 보았습니다. 당신의 (노근리 사건)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는 일치합니다. 당신은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서 내가 제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생명을 가까스로 구했습니다. 그 점을 나는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면 나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친구 조지 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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