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나 찍기 위해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선거 때 당당함을 보이던 노무현대통령이 막상 대통령이 되어 미국에 가서는 친미발언으로 일관하고 귀국하자 비판의 소리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5·18광주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한총련 학생들의 방해로 국가원수가 행사장 뒷문출입을 해야하는 수모까지 당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걱정과 희망을 가지고 미국에 왔는데 걱정은 두고 희망만 가지고 돌아간다”고 득의에 찬 미소마저 보였지만 귀국과 함께 그 말은 여지없이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노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대해서는 그 평가가 엇갈립니다. 긍정적인 쪽은 ‘흠집 난 한미동맹관계를 복원하고 신뢰를 회복한 것이 큰 성과’라고 보는가 하면 부정적인 쪽은’친미적 언행과 저자세로 굴욕외교를 펼쳤다’고 혹평합니다.

사실 방미 길에 오를 때만해도 노 대통령은 물론이려니와 뜻 있는 국민들은 걱정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국내의 반미 기류로 한미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냉각돼 있는 데다 부시라는 사람이 워낙 좌충우돌을 일삼아 여차하면 한반도에 불을 지를 태세여서 과연 정상회담이 잘 될 수는 있을까 하는 우려마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노 대통령으로서는 회담이 끝날 때까지 줄곧 긴장을 풀지 못 했을 것입니다. 대통령으로서 첫 나들이인데다 정상회담 경험도 전무하고 거기다 풀어야 할 과제도 무게가 천근이었으니 걱정이 태산이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습니다.

하지만 첫 대면이었음에도 부시대통령이 의외로 ‘환대’를 하고 ‘호의’를 보이면서 안도의 숨을 돌렸을 게 분명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말은 곧 회담이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전후사정을 감안한다면 저자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방미성과를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쟁예방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이 화급했던 상황에서 그 정도 외교성과면 성공한 것이 아니냐는 옹호론도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시대 때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이웃 나라와 외교하는 방도’에 대해서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릇 강대한 나라와 약한 나라간의 관계는 두 방도가 있으니 하나는 세(勢)로 압박하는 패도적(覇道的)관계요, 또 하나는 인애(仁愛)로서 대하는 왕도적(王道的)관계입니다. 강한 자가 인애로서 약한 자를 대하는 것을 이대사소(以大事小)라하고 약한 자가 압박을 면하기 위해 강한 자의 세(勢)를 따르는 것을 이소사대(以小事大)라 합니다. 대국이 인자의 도(仁者之道)로 소국을 도우면 천하를 보전하고 소국이 지자의 도(智者之道)로 대국을 섬기면 나라를 보전한다고 하였습니다. 강한 작은 나라를 사귀는 것은 낙천(樂天)하는 것이고 작은 나라가 강한 나라를 따름은 그 힘이 두렵기(畏天)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자의 도’란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좇는 것은 지혜이고 그럼으로써 나라를 보전한다는 뜻입니다.
예나 이제나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약한 자가 강한 자에 굴종하는 것은 불변의 이치입니다. 인간사회도 그러려니와 국제사회 역시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와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학관계(力學關係)입니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아쉽기는 하지만 ‘발등의 불‘을 껐다는데서 의미를 찾아야 될 것입니다. 외교란 엄연히 상대가 있고 또 그 상대가 전 세계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시피 한 초강대국이라는데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전쟁을 예방하는 것은 그 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해 온 경우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이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둑에서 대국(大局)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돌 만 탐하면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보다 큰 안목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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